박현웅 Bonbon-언젠가 그곳에서 우리는(80×52㎝, 나무에 오일)
홍익대 미술대학원 공예디자인학과 졸업. 선화랑,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식빵 가루를
비둘기처럼 찍어먹고
소규모로 살아갔다.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간신히 팔짱을 끼고
봄에는 조금씩 선량해지고
낙엽이 지면
생명보험을 해지했다.
내일이 사라지자
어제가 황홀해졌다.
친구들은 하나둘 의리가 없어지고
밤에 전화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포성이 울렸지만
남극에는 펭귄이
북극에는 북극곰이
그리고 지금 거리를 질주하는 싸이렌의 저편에서도
아기들은 부드럽게 태어났다.
우리는 위대한 자들을 혐오하느라
외롭지도 않았네.
우리는 하루종일
펭귄의 식량을 축내고
북극곰의 꿈을 생산했다.
우리의 인생이 간소해지자
이스트를 가득 넣은 빵처럼
도시가 부풀어올랐다.
뭐 대단한 꿈이나 갈망이 있었던 건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소득이 갑자기 늘지는 않을 테다. 우리는 1년 내내 해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하고, 여전히 눈 뜨면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나가야 한다. 주말마다 포커를 하던 의리 없는 친구들은 다 흩어졌다. 어제는 생명보험을 해지하고 오늘은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등록을 했다. 내 생명 관리는 온전히 내 몫이다. 비록 펭귄의 식량이나 축내더라도 잘 먹고 잘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소규모 인생 계획 속에서 사는 사이 우리는 저마다 조금씩 고독해진다. 인생이 간소해졌다고 외로워할 것까지는 없다. 재능은 고독 속에서 더 잘 꽃핀다지 않던가.
장석주 시인
2017-05-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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