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원 이상, 집무실과 비서, 판공비, 그리고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가 나오는 자리이면 최고급 지위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 최고급 지위는 수천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최고의 자리를 탐내는 소위 엘리트 수만명은 대통령 주변을 돌면서 충성경쟁을 벌인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은 이들이 충성하도록 권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통치력을 강화하였다.
최고위직들은 국정 운영을 현장에서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만큼 유능하면서도 대통령과 뜻을 함께해야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그 캠프 사람들이 대거 최고위직에 진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 또는 그 측근과 가까운 사람을 고위직에 임명하면 으레 전문성을 무시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비판이 항상 적절하지는 않지만, 정권 교체기마다 낙하산 소동이 그치지 않는 것은 전문성 없이 친분만으로 고위직을 차지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모두 하나같이 권력행사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치렀다. 혁명으로 쫓겨나고, 비명에 타계하고, 직접 옥살이를 했거나, 자식이 옥살이를 했다. 한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현 대통령도 측근들은 물론 친형까지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을 궁지로 몰고 간 것은 예외 없이 부패다. 유독 죽은 권력에만 강하다는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검찰은 부정한 돈을 받은 현직 대통령의 자식들을 처벌하였다. 부패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조사했다는 불평은 있었지만 그렇게 불평하는 사람도 사안 자체를 조작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문제는 전임 대통령이 무슨 고초를 겪었는지 생생히 보았는데도 다시 같은 일들이 판박이처럼 재현된다는 점이다.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여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까닭은 대통령 권력에 대한 오판 때문이다. 대통령은 분명히 최고 권력이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무소불위였으나 지금은 아니다. 유효기간도 5년인데 소위 레임덕까지 고려하면 그보다도 더 짧다. 비리 행각에 동원되는 하수인들은 한껏 아부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잽싸게 빠져나간다. 이런 무리들과 함께 벌이는 일이 감쪽같이 묻혀버릴 턱이 없다.
민주화는 권력체제를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최고급 지위의 임기도 함께 그만큼 줄여 놓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부분의 고위직은 아직 임기가 남았는데도 함께 물러난다. 명분은 새 대통령의 새로운 통치 방향에 들어맞는 진용을 짜야 한다는 것이지만, 본질은 한시라도 빨리 내 사람들에게 최고급 지위를 하나라도 더 많이 배정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직의 숫자는 바로 대통령 권력의 지표이기도 하다. 후보시절에 약속한 공기업 민영화가 집권 후에는 흐지부지되는 것은 민영화가 대통령 권력의 위축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독립은 보통 시기상조라고들 하는데, 대통령과 그 측근이 대통령의 권력 축소를 싫어한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측근의 비리는 대통령이 권력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비선에 넘겼기 때문에 일어난다. 감당 못할 권력이라면 측근이 아니라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제도화된 공식기구에 위임할 일이다. 중앙은행, 금융감독기구,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독립시키면 대통령의 권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권한 축소가 달갑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스스로 행사하지 못할 권력을 측근 비선에 맡기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
그동안 겪은 일 때문에 국민은 새 대통령에게서 무엇보다 청렴성을 갈망한다. 현 5년 단임제 권력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면 권력에 대한 욕심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중한 대통령 권한의 제도적 위임은 권력행사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부패를 크게 줄인다. 이러한 선거공약은 막연한 청렴 이미지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어필할 것이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모두 하나같이 권력행사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치렀다. 혁명으로 쫓겨나고, 비명에 타계하고, 직접 옥살이를 했거나, 자식이 옥살이를 했다. 한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현 대통령도 측근들은 물론 친형까지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을 궁지로 몰고 간 것은 예외 없이 부패다. 유독 죽은 권력에만 강하다는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검찰은 부정한 돈을 받은 현직 대통령의 자식들을 처벌하였다. 부패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조사했다는 불평은 있었지만 그렇게 불평하는 사람도 사안 자체를 조작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문제는 전임 대통령이 무슨 고초를 겪었는지 생생히 보았는데도 다시 같은 일들이 판박이처럼 재현된다는 점이다.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여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까닭은 대통령 권력에 대한 오판 때문이다. 대통령은 분명히 최고 권력이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무소불위였으나 지금은 아니다. 유효기간도 5년인데 소위 레임덕까지 고려하면 그보다도 더 짧다. 비리 행각에 동원되는 하수인들은 한껏 아부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잽싸게 빠져나간다. 이런 무리들과 함께 벌이는 일이 감쪽같이 묻혀버릴 턱이 없다.
민주화는 권력체제를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최고급 지위의 임기도 함께 그만큼 줄여 놓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부분의 고위직은 아직 임기가 남았는데도 함께 물러난다. 명분은 새 대통령의 새로운 통치 방향에 들어맞는 진용을 짜야 한다는 것이지만, 본질은 한시라도 빨리 내 사람들에게 최고급 지위를 하나라도 더 많이 배정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직의 숫자는 바로 대통령 권력의 지표이기도 하다. 후보시절에 약속한 공기업 민영화가 집권 후에는 흐지부지되는 것은 민영화가 대통령 권력의 위축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독립은 보통 시기상조라고들 하는데, 대통령과 그 측근이 대통령의 권력 축소를 싫어한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측근의 비리는 대통령이 권력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비선에 넘겼기 때문에 일어난다. 감당 못할 권력이라면 측근이 아니라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제도화된 공식기구에 위임할 일이다. 중앙은행, 금융감독기구,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독립시키면 대통령의 권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권한 축소가 달갑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스스로 행사하지 못할 권력을 측근 비선에 맡기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
그동안 겪은 일 때문에 국민은 새 대통령에게서 무엇보다 청렴성을 갈망한다. 현 5년 단임제 권력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면 권력에 대한 욕심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중한 대통령 권한의 제도적 위임은 권력행사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부패를 크게 줄인다. 이러한 선거공약은 막연한 청렴 이미지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어필할 것이다.
2012-08-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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