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피라미드가 버려졌던 순간/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피라미드가 버려졌던 순간/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입력 2022-07-18 20:32
수정 2022-07-19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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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멘카우라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솁세스카프라는 이름의 파라오였다. 그런데 이 인물은 갑작스럽게 선대로부터 이어지던 관습을 포기하고 마스타바 형식으로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 이렇게 피라미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직후에 버려졌다.

마스타바는 직사각형 형태의 상부 구조를 갖고 있는 무덤을 뜻한다. 이 형식은 피라미드가 왕묘로 사용되기 이전, 즉 초기 왕조 시대 동안에만 왕묘로 사용됐다. 피라미드가 왕묘로 사용되기 시작한 고왕국시대에 이르러선 귀족들의 무덤만이 이 형식으로 지어졌다.

솁세스카프의 이러한 일탈적 선택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훗날 이집트의 대표적인 신앙 체계가 되는 태양신앙은 4왕조 시대 동안에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 갔다. 태양신앙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은 태양 신관단의 권력이 점차적으로 커져 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파라오 입장에서는 이들 태양 신관단의 비대해진 권력이 부담이 됐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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솁세스카프의 마스타바
솁세스카프의 마스타바
피라미드는 태양과 연관이 매우 깊은 상징물이다. 그런 만큼 피라미드를 파라오가 거부하는 것은 태양 신관단을 견제하는 데에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솁세스카프는 분명히 태양신앙과는 다소 거리를 두려고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솁세스카프의 선왕들은 제데프라, 카프라, 멘카우라 등과 같이 이름에 태양신의 이름인 ‘라’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반면 솁세스카프는 ‘그의 영혼은 고결하다’와 같이 ‘라’와는 완전히 무관한 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솁세스카프의 노력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다시 왕의 무덤은 피라미드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파라오들 역시 다시 자신의 이름에 태양신의 이름을 넣는 선택을 했다.

이후 5왕조 시대 동안 태양신 ‘라’는 결국 이집트 최고신의 지위에 오른다.
2022-07-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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