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도산 안창호의 마지막 바람/손원천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도산 안창호의 마지막 바람/손원천 문화부장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9-03-07 22:44
수정 2019-03-0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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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나를 유상규군 곁에 묻어 주게.” 꼬박 81년 전 이맘때, 임종을 앞둔 도산 안창호(1878~1938)가 남긴 말이다. 그의 마지막 소원에 등장하는 이는 태허 유상규(1897~1936)다. 대체 태허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도산이 조상과 가족도 멀리하고 그 곁에 묻히길 바랐을까. 미세먼지가 매캐하던 봄날, 태허의 묘가 있는 망우리공원을 다녀온 까닭은 오로지 그 궁금증 때문이었다.

한때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리던 곳. 여태 이 이름이 귀에 익은 이들이 많을 터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서울시, 서울관광재단 등이 인문학길을 조성하는 등 살뜰하게 살핀 덕에 이젠 제법 명소로 발돋움한 모양새다. 망우리공원에 묻힌 유명 인사는 60명이 넘는다. 만해 한용운 등 독립지사를 비롯해 시인 박인환, ‘코리안 엘비스’ 차중락, 화가 이중섭, 여성 작가 김말봉 등의 묘가 25만여평의 공원에 흩어져 있다. 그중 하나가 도산의 묘터와 태허의 묘다.

지난 3일 찾은 태허의 묘. 이낙연 국무총리의 이름이 적힌 꽃바구니가 볕 받으며 묘 앞을 지키고 있다. 태허의 묘 바로 위는 도산의 묘터. 봉분은 사라지고 묘비만 덩그러니 남았다.

안내판과 김영식의 책 ‘그와 나 사이를 걷다’(호메로스) 등에 적힌 내용을 추려 도산과 태허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태허는 경성의전을 나온 엘리트 의사다. 요즘으로 치면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서울의대’ 출신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태허는 학업을 중단하고 중국 상해 임시정부로 건너가 도산의 비서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에 나선다. 그러다 인재가 필요한 민족이니 고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라는 도산의 권고로 1924년 귀국해 학업을 잇는다. 귀국 후에도 동우회, 청년개척군 등의 조직을 통해 독립운동을 계속한 것은 물론이다. 이후 의사와 독립운동가의 길을 병행하던 태허는 환자를 돌보다 세균에 감염돼 39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둘의 사연은 2년 뒤 도산이 세상을 뜰 때 다시 한번 세인들의 가슴을 적셨다. 일제강점기의 잡지 ‘삼천리’는 도산이 사망하기 며칠 전에 남긴 말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나 죽거든 내 시체를 고향에 가져가지 말고, 달리 선산 가튼 데도 쓸 생각을 말고, 서울에다 무더 주오. 공동묘지에다가. 유상규군이 눕어잇는 그겻 공동묘지에다가 무더 주오.” 도산이 태허를 얼마나 아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소원대로 도산은 1938년 태허의 묘 바로 위에서 영면에 들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1973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도산공원이 조성됐고, 도산의 묘는 이장됐다. 지금 남아 있는 건 도산의 묘비뿐이다. 이후 태허는 1990년 건국훈장을 받는 등 뒤늦게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랐고, 국립묘지로 이장할 수 있는 자격까지 얻게 됐다. 그러나 태허의 후손들은 국가의 호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도산의 묘가 옮겨진 마당에 도산의 묘비가 있는 망우리공원에서 태허의 묘를 옮기는 것은 사제의 넋까지 갈라놓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제 도산공원으로 가 보자. 공원에 들면 도드라져 보이는 도산의 동상 둘이 객을 맞는다. 하나는 서 있고, 하나는 앉았다. 벤치에 앉은 도산이 선 도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구도다. 도산의 동상이 많아서 나쁠 건 없다. 한데 더 좋은 건,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도산이 앉은 자리에 태허의 동상을 두는 것이다. 두 손을 앞으로 모은 태허가 도산을 우러르고 있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좋지 않은가.

도산공원 안에 태허의 묘를 두는 것은 어렵다 해도 동상 하나 세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야 도산과 태허의 넋이 별리의 아쉬움을 다소나마 잊을 것이고, 나아가 보다 많은 이들이 둘의 사연을 알고 기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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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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