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이츠 오케이!/전민식 작가

[금요칼럼] 이츠 오케이!/전민식 작가

입력 2021-09-02 20:34
수정 2021-09-0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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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 작가
전민식 작가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시화방조제를 건너야 한다. 10㎞의 긴 방조제인 데다가 구간단속 구간이라 평균 시속 60㎞로 달려야 한다. 신나게 달릴 수 없다 보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측에 화물선 접안 부두가 눈에 들어오고 좌측엔 시화호 위에 떠 있는 철탑과 느리게 날개를 돌리는 풍력발전기도 보인다. 한껏 음악에도 취해 보는데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잇 이즈 오케이’(It is okay!)라는 노래를 듣게 됐다. 상대를 안심시킬 때 미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의미가 변한 ‘괜찮아’라는 뜻의 노래였다. 그 노래는 내겐 좀 남다른 노래였다.

우리 부부는 아들을 학원에 보낼 여력이 없어 각자 공부해 아들을 가르쳐 왔는데 아내가 맡은 부분 중에(사실 아내가 교육을 거의 도맡아 왔지만) 영어 흘려듣기가 있었다. 재미있는 동영상을 자막 없이 오래 보다 보면 어느새 영어가 귀에 들어온다는 방법인데 나름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는 잠이 들 때 세 사람이 한 침대에 같이 누워 아들이 잠들 때까지 흘려듣기를 하며 잠자리 동행을 했다. 그 시절 자주 보던 영어 애니메이션의 배경 음악이 ‘잇 이즈 오케이’였다. 부모의 존재를 모르는 한 소녀와 역시 부모를 잃은 한 소년이 서로를 의지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들이 서로 이해하고 위로해 줄 때 흘러나오는 조금은 쓸쓸한 분위기의 노래였다.

잊고 있었는데 그 노래의 내력에 대해 알게 됐다. 살아날 가능성이 2%뿐인 한 여가수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불렀던 노래였던 것이다. 가능성 2%가 있다는 건 남은 인생에 뭔가가 있는 것과 같다는 말도 듣게 됐다. 여러 장기에 암이 퍼진 자신의 처지를 노래에 담았던 것인데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인간이 지닌 말할 수 없는 어떤 숭고함 같은 걸 느꼈다. 노래를 잘하지도 못했고 뛰어난 목소리를 지닌 가수는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우리 모두는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고, 상흔이 남지만 결국 아물지 않던가. 전설 속 한 소년이 있었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미래에 관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시름시름 앓다 죽은 소년이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밤마다 울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꿈에 나타나 지체 높은 집안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울지 말라고 했단다. 나는 이제 괜찮다고. 부산 동래부 유부사의 전설이다. 그는 다른 집의 아이로 태어나 성장해서 동래부의 부사로 부임해 오게 된다. 그는 꿈에서 보았던 한 초가집엘 가게 되는데 그 초가집이 자신이 전생에 살았던 집이었으며 거기서 만난 초로의 여인 역시 전생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유부사는 전생의 어머니를 끌어안고 밤새 울었다. 전설은 고통과 상처는 언젠가는 치유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냥 흘러가고 말았을 그 노래가 요즘 내게 사무친다. 어떤 죽음이 억울하지 않고 슬프지 않겠는가. 주검 앞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억울해하고 슬퍼한다. 그들을 위로할 말은 딱히 없다.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그들의 눈에 깃든 슬픔을 보면서 ‘잇 이즈 오케이’라고 말해 줄 뿐.

언젠가 비가 몹시 오던 날 안치를 하러 왔던 분들이 있었다. 억세기 비가 퍼붓는데 다가 너무 구슬프게 울어 위로의 말은 전하지 못했다. 다만 땅에 묻힌 이를 보며 언젠가 다시 태어나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그들을 만나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세상을 등지지만 아주 먼 미래에 혹은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날 수도 있을 테니 ‘괜찮다’고 말이다.

노래를 부른 가수가 위대하다고 느껴진 건,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용기와 사랑 때문이다. 이 시절 사랑 때문에, 인연 때문에 슬프고 상처 입은 모든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2021-09-0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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