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친절도 사회의 인프라다/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기업전략 리더

[2030 세대] 친절도 사회의 인프라다/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기업전략 리더

입력 2021-10-28 17:40
수정 2021-10-2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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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 & 기업전략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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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전에 있었던 일이다. 두 돌 된 첫째 조카가 코감기에 걸려 동생이 소아과에 데리고 가는 길에 함께 나섰다. 소아과가 있는 상가 건물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동생이 첫째 유모차를 밀고, 나는 둘째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는 젊은 엄마와 두 남매가 타고 있었다. 아마 우리와 같은 소아과에 가는 듯했다.

소아과가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남매의 엄마는 네댓 살쯤 되는 딸아이의 손을 잡더니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병원 예약 시간에 늦어서 엄마는 ○○이 데리고 먼저 뛰어갈 테니까, 너는 유모차랑 아기들 다 내릴 때까지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 눌러 드리고 맨 마지막에 내려서 와. 알겠니!”

동생도 나도 깜짝 놀라서 괜찮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 엄마는 아들에게 한 번 더 눈으로 다짐을 하고는 뭐라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내려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뒤에 남은 남자아이는 엄마가 시킨 대로 예의 바르게 우리가 다 내릴 때까지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었다.

나는 자녀가 없다. 조카들이 태어난 후에야 아이가 있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정도다. 주변의 친구들을 돌아보아도 비슷하다.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생물학적으로 아기를 낳기에 적절한 나이를 놓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엄마들에게 너무나 친절하지 않다, 이 대한민국이란 사회는.

방송인 사유리씨의 출산이 던진 신선한 충격 때문인지, 요즘은 모이면 더 늦기 전에 난자 냉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화제가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도 여전히 아이 자체가 싫은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온갖 불친절, 불이익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닐까 하는.

아마도 육아라는 것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을 남성 공무원들이 탁상머리에서 저출산 대책을 세운답시고 호들갑을 떠는 대신, 여성과 아이들에게 조금 더 친절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래도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였을까.

불친절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어린 아들에게 일상 속의 친절을 가르치는 한 엄마의 교육은, 그래서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불친절한 세상에서 여전히 친절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런 사람들 덕분에 이 수상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에도, 아직 미래에 대해 조금은 낙관적일 수 있다고.

맨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는 우리를 앞질러 엄마와 여동생을 따라 신나게 뛰어가는 남자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동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우리 아들들 저렇게 키워야지.”
2021-10-2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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