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빛 발견] ‘당신’이라는 말/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당신’이라는 말/이경우 어문팀장

이경우 기자
입력 2017-07-26 23:18
수정 2017-07-27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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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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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當身)의 의미는 극과 극을 오간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책을 소중히 다루셨다”에서는 할아버지를 아주 높인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렇게 종종 ‘당신’이라는 말이 대신한다. 최고의 높임이다.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에서는 뜻이 달라진다. 이러면 “뭐? 당신. 누구한테 당신이야”라는 말을 듣거나 뺨을 맞기 십상이다. 이때 ‘당신’은 상대를 낮잡는 말이다.

이 외 상황에서는 대부분 높이거나 대접하는 말로 쓰인다. “이 일을 한 사람이 당신이오”에서도, “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에서도 높임의 의미가 담겼다.

부부 사이에서도 애초 높이는 의미를 지녔었다. 지금은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다. 평범하게 상대를 가리킬 뿐이다.

1921년 5월 애국계몽단체였던 계명구락부는 ‘당신’을 이인칭으로 쓰기로 의견을 모았다. 지금 부부 사이에서처럼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서로 이렇게 부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확산시키려는 운동 차원이었다. 당시 ‘당신’의 의미는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삼인칭이었다.

계명구락부의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야심에 찬 운동이었지만, 오랜 사고와 관습을 넘을 수 없었다. 말이 바뀌면 물론 의식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이 먼저 달라져야 말도 쉽게 바뀐다. 아직 우리는 형인지 동생인지 서열이 정해져야 관계가 원활해진다.
2017-07-27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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