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순건의 과학의 눈] 나비, 홍어 그리고 알라딘의 카펫

[남순건의 과학의 눈] 나비, 홍어 그리고 알라딘의 카펫

입력 2020-09-28 17:30
수정 2020-09-2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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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건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남순건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곤충 중에 가장 다양하면서도 화려한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나비일 것이다. 나풀거리며 날아가는 나비를 보면 뭔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날아다니는 속도는 빠르지 않으나 쉽게 잡지 못한다. 보통 곤충들은 천적으로부터 눈에 띄지 않으려 하고, 빨리 날아 도망가려 하는데 나비는 자신을 드러내고 그리 빨리 날아가지도 않는다.
사실 나비의 비행패턴을 보면 매우 빠르게 방향을 바꾼다. 커다란 날개를 노 젓듯 사용해 다른 어떤 곤충들보다 방향을 쉽게 바꾼다. 고속촬영으로 나비의 날갯짓을 살펴보면 날개를 움츠렸다 펴면서 마치 김연아 선수가 빠르게 회전하듯이 몸을 틀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천적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다. 물리학의 회전운동 원리를 체득한 곤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비를 닮은 마이크로 로봇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는 많이 있다. 단순히 위아래로 날갯짓하는 로봇이라면 나비처럼 우아하게 날 수 없다. 날개를 접을 수도 있어야 부드러운 나비의 날갯짓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닷속 물고기들은 주로 좌우로 흔드는 꼬리와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헤엄을 치는 반면 홍어는 커다란 지느러미를 깃발처럼 펄럭거리며 물속을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간다. 매우 효율적인 수영법이다. 또 배 밑에 있는 작은 지느러미로 바닥에서는 걸어 다니기도 한다. 미국 버팔로대 기계공학과에서는 몇 년 전 가오리나 홍어의 지느러미가 펄럭거릴 때 생기는 물의 흐름과 소용돌이들을 자세히 연구한 바 있다.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오랫동안 앞으로 헤엄을 쳐 나갈 수 있는 원리를 밝힌 것이다. 홍어 지느러미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고 이를 응용해 바닷속을 탐사하는 수중 드론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영국 해군에서는 홍어를 닮은 무인 잠수정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다시 물 밖으로 나와 보자. 인간은 항상 하늘을 나는 꿈을 꿔 왔다. 알라딘의 마술카펫도 그런 꿈을 담은 환상 중 하나이다. 비행기는 닫힌 공간 속에서 경험하는 비행이기 때문에 얼굴을 스쳐 가는 바람의 경험을 하지 못한다. 낙하산이나 행글라이딩은 바람을 느끼게 해 주지만 비행이 아니라 떨어지는 낙하운동이다. 오랜 시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마술카펫과는 다른 것이다. 날아다니는 카펫을 만들 수 있을까?

2007년 하버드대 연구진은 10㎝ 길이에 0.1㎜ 두께의 막이 1초에 10번씩 0.25㎜의 진폭으로 펄럭거리면 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공기보다 무거운 작은 마술카펫이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보인 것이다. 요즘 마이크로 로봇의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작은 막에 전기자극을 주면서 막이 움츠러들게 하는 기술은 이미 있고 이 막 위에 얇은 태양전지를 입힌다면 혼자서 오랫동안 스스로 날아다닐 수 있는 ‘카펫’ 드론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작은 것을 만들었다고 인간을 태운 카펫을 바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드론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마이크로 드론이 천천히 날아다니는 세상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과학과 기술에서는 항상 새로운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생각의 원동력은 상상력이다. ‘이러면 어떨까’ 하는 질문이 상상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곧 한가위 대명절이다. 유례없는 감염병 대유행으로 모두 지쳐 있는 지금, 재충전을 할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재충전 후 새로운 상상여행을 계속하면 좋을 것 같다.
2020-09-2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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