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의 유레카] 디지털 신분증명 시대의 정체성/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이은경의 유레카] 디지털 신분증명 시대의 정체성/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입력 2021-08-23 17:28
수정 2021-08-24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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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 질문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온라인 사이트에서 보안을 위해 본인 인증을 해야 할 때 마주하는 현실의 질문이기도 하다. 백신접종 예약 때문에 평소에 오프라인에서 일처리를 하던 어르신들까지 디지털 신분증명을 경험하게 됐다. 스마트폰 인증, 아이핀, 공인인증서, 카카오나 네이버 인증서 등 디지털 신분증명은 다양하지만 점점 더 많은 선택지가 휴대전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정체성을 인정받는 방법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진화했다. 사실 아주 오랫동안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즉각적이고 명백한 방법은 인간 신체 그 자체였다. 키, 골격,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은 신분증명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정체를 숨기려는 이들은 복면을 썼다. 신체가, 얼굴이 신분증명인 상황에서는 내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사진술이 개발된 뒤로는 내가 거기 없어도 얼굴로 나의 신분증명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서류나 신분증에 붙이는 조그만 사진을 ‘증명사진’이라 부르는 것이다.

관련 과학기술이 본격 등장하기 전에는 신분증명이 사회적 방식으로 이루어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큰 사고나 질병, 장기간에 걸친 성장이나 노화로 신체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 신분증명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정하는지 여부에 달렸다. 생김새에 대한 판단, 공유하는 기억과 경험, 사람들과의 친소 관계 등 사회적 요인이 신분증명에서 중요했다. 1982년 프랑스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이와 비슷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났다 돌아온 마르탱이 원래 그 사람인지, 마르탱의 재산을 노리는 가짜인지를 법정에서 판정하게 됐다. 많은 의심스러운 정황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그를 가장 잘 아는’ 아내의 의견을 듣고 판결을 내렸다. 유전자 검사라는 강력한 과학기술 무기가 나타나기 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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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신분증명에서 신체, 성격, 행동방식, 사회적 관계 등의 비중은 줄고 생체 정보와 디지털 정보의 중요성이 커졌다. 유전자, 홍채, 지문 같은 생체 정보는 아직까지 일상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다. 반면 디지털 신분정보 사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1995년 영화 ‘네트’는 디지털 신분정보의 불안전성을 소재로 했다. 주인공인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는 디지털 신분정보가 해킹당해 조작되면서 자기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고 범인으로 몰린다.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일상과 업무를 인터넷과 메신저로 처리했기 때문에 주인공의 얼굴이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영화 ‘네트’로부터 약 25년이 지난 지금, 보안기술 발전 덕분에 디지털 신분정보의 안전에 대한 걱정은 많이 줄었다. 대신 디지털 신분증명에서 모바일 비중이 늘어나면서 개인의 휴대전화 의존도는 높아졌다. 여러 디지털 신분증명 인증서를 발급받는 과정 중 첫 단계는 휴대전화를 인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를 거치면 누가 조작하든 상관없이 휴대전화가 그 사람인 듯 여러 행위를 할 수 있다. 이처럼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인격체로서 ‘나’와 증명수단이 점점 더 분리되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분석할 때 기존의 신체, 인식, 사회관계에 더해 기술에 대한 인식과 사용 경험 등 기술과의 상호작용 측면이 포함돼야 한다는 새로운 문제를 던지고 있다.
2021-08-2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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