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의 유레카] 노벨상과 한국 과학 수준

[이은경의 유레카] 노벨상과 한국 과학 수준

입력 2020-11-02 20:40
수정 2020-11-03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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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됐다. 올해의 노벨상 시즌도 끝났다. 해마다 9월과 10월은 노벨상과 연결해 기초연구 관련 기사가 풍부한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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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노벨상 관련 기사들은 유형화돼 있다. 9월에는 노벨상 동향과 한국의 수상 가능성, 10월 초 수상자가 발표되면 수상자 소개와 한국 기초과학에 대한 진단과 평가 기사가 많다. 기사 제목에는 예측, 기대, 불안 등 정서에 호소하는 단어들, 2019년을 예로 들면 ‘언제쯤’, ‘노벨상앓이’, ‘홍역’, ‘빈손’ 등이 사용됐다. 그 중 하나는 “박수만 쳐야 하는 ‘노벨상 시즌’ 돌아왔네”였다. 내용은 수상이 유력한 연구 영역과 과학자들 소개였다. 제목은 학술정보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이른바 유력 후보 명단에 한국인이 없는 아쉬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과학자들에게 이것은 힘 빠지게 하는 표현이다.

10월 초에 수상자가 발표되면 전전긍긍, 반성, 다짐 등의 기사들을 만난다. 그동안 연구개발에 많이 투자했으니 이제 노벨상을 받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왜 아직’, ‘언제쯤’ 하는 내용이 많았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일본 과학자가 거의 매년 노벨과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과의 비교 기사도 많았다. 2019년에는 일본과의 무역 마찰 상황에서 일본의 과학자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더 예민했다.

과학계의 대응은 크게 두 방향이었다.

첫째, 노벨상 수준의 성과가 나오려면 장기간의 연구 축적이 필요한데 우리는 아직 그 정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니 믿고 기다려 주면 좋겠다. 둘째, 노벨상이 과학 발전의 중요한 척도이지만 과학의 목표는 아니다. 기초과학 연구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재가 과학계로 몰리고, 안정적ㆍ장기적 연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자율적인 연구환경이 만들어지면 그 결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

올해 기사들은 비슷한 가운데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인 전망 기사 외에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명단에 포함된 현택환 박사에 대한 기사가 많았다. 수상자 발표 이전에 그의 소속 대학 학생들을 인터뷰한 것이나 발표 이후 그가 ‘실패’했다고 표현한 것은 좀 과했다. 그러나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이것을 계기로 한국의 훌륭한 과학자와 그의 업적이 널리 소개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여성, 비서구인, 흑인 등 과학계 소수집단을 언급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여성 수상자가 많아진 것이 배경이다. 2000년대 이후 노벨과학상을 받은 여성은 8명인데 2020년 한 해에 3명이 나왔다. 특히 물리학, 화학에서는 1964년 이후 2009년이 될 때까지 여성 수상자가 없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연달아 여성들만 수상했다. 이러한 사실을 다루면서 과학계에서 비서구인이나 흑인 소외 등 다양성 문제로 관심이 확대된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여전히 남성 수상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여풍’ 거세다”란 기사는 현실의 소외 문제를 가리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노벨상 시즌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제 노벨상 시즌은 한국 과학자들의 훌륭한 성과를 소개하고 다 같이 알아 가는 계기로 활용돼야 한다.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으면 정말 기쁜 일이지만, 그것이 한국 과학의 목표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노벨상에 ‘실패’한 현택환 교수의 “노벨상을 받았더라도 연구자로서의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 모두의 태도가 되면 좋겠다.
2020-11-0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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