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미 작가
외국인 파트타임 직원이 홀을 맡아서 일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동남아 쪽에서 온 듯한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다. 싹싹하고 일손도 빠르고 마음에 쏙 든다.
딸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는데, 사장님께서 완성된 바비큐 플래터를 내주시면서 그녀에게 묻는다.
“말년. 말년이라는 말 뭔지 모르지?”
오, 사장님이 직원에게 던지는 질문치고 꽤 독특해서 귀가 번쩍 뜨였다.
“쉬운 말로 알려 주세요.”
‘말년’이라는 단어는 외국인에게는 좀 어렵겠다. ‘말년 병장’, ‘말년 대접’ 등등, 한국 특유의 말년 문화까지 이해하기에는 조금 방대할 수도 있겠다. 외국도 사람들 사는 곳이니까 말년이라는 개념이 있겠지만 여전히 성인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가 적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말년은 조금 더 독특하지 않을까. 사장님은 말을 좀더 천천히, 꼭꼭 눌러서 설명을 이어 가신다.
“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잖니. 그게 말하자면 말년인 거야. 보통 말년에는 일들을 쉬엄쉬엄해요. 이제 다 끝났다는 거지. 빠이빠이~.”
그 똑 부러지는 직원이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대번 이해한 듯한 소리가 들린다.
“아아~.”
“그러니까 너도 쉬엄쉬엄해도 돼.”
보통 사장님들은 직원이 ‘내 일’처럼 열심히 해 주기를 바라지 이렇게 쉬면서 놀면서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혹시 우리 바비큐 집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의 겉과 속이 다른 건 아닐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말투가 따스했다. 평소에 손님으로 와서 본 나도 이 젊은 외국인이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알겠던데, 사장님이 그걸 모르시려고. 이런 성실한 직원이 그만두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간 열심히 일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정확한 상황은 몰라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타국 생활의 외로움에 대한 위로 등이 이래저래 섞인 듯해서 내 마음도 덩달아 따스해졌다.
“사장님이 계속 말하니까 맘에 걸리네요.” 이제는 조금 쉬면서 일하라는 이야기를 이전에도 몇 번 들었나 보다. 이 야무진 직원 놓치기가 많이 싫으셨던 듯. 일이 잘되게 하는 데는 일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마음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사장님과 직원, 선생님과 학생, 가까이는 부모와 자식…. 내가 하나 줬으면 그만큼 혹은 그 이상 받고 싶은 마음이야 사람이라 당연히 드는 마음이다. 그래도 이 바비큐 가게의 훈훈한 분위기를 보니 직원도 참 야무지게 일 잘했지만, 사장님도 그만큼 인정하고 대우해 주신 듯하다. 긍정의 쳇바퀴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 가게다. 말년, 마무리는 그래서 초년보다 더 묵직하고 중요하다.
2022-09-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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