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논설위원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의 호텔 건립 논란은 처음부터 초점이 어긋났다. 무엇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보다 무엇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했다. 호텔을 지을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곁에 덕성여중고와 풍문여고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보건법은 학교 반경 200m 이내의 상대정화구역과 50m 이내의 절대정화구역에서는 관광호텔을 마음대로 세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곳은 아예 학교와 담장을 맞대고 있다. 여권은 이 규정을 피해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관광진흥법을 개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호텔 건립 계획은 넘어서기 쉽지 않은 벽에 가로막혀 있다. 문제는 이렇게 되고 보니 송현동 부지의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호텔만 지을 수 없을 뿐 다른 건축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종로구 관계자는 “사업계획을 바꾸어 오피스 빌딩을 짓겠다고 건축허가를 요청하면 행정 관청에서 거부할 법적 권한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이곳이 서울시의 ‘북촌 제1종 지구단위계획 구역’이어서 신축 건물의 높이만 3~4층으로 제한될 뿐 업무용 공간으로 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경복궁이 바라보이는 송현동 부지는 북쪽의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의 북촌, 남쪽의 인사동과 종로를 연결해 거대한 전통 문화권을 만드는 핵심적 위치에 있다. 강남 세곡지구로 이전하는 풍문여고 자리에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예문화박물관이 완성되면 일대의 문화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렇듯 문화적 소통로 역할을 맡아야 할 송현동 부지가 어디에 있어도 좋을 오피스 빌딩의 숲으로 바뀌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한다. 대한항공은 송현동 개발을 ‘복합문화단지’ 계획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사동과 삼청동의 땅값과 임대료는 이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랐다. 호텔이 아니더라도 글자 그대로의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해 사업성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대한항공에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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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6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