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광고, 조현아 이름으로 다시 내라

사과 광고, 조현아 이름으로 다시 내라

입력 2014-12-17 00:00
수정 2014-12-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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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의 시시콜콜]

어제 아침, 정확하게는 이 글을 쓰고 있는 16일 아침 조간신문 1면에 일제히 사과 광고가 실렸다. 9개 종합일간지와 8개 경제지, 7개 스포츠신문까지 같은 광고가 1면 하단을 채웠다. 온 국민의 분노와 전 세계인의 조롱을 한 몸에 받으며 나이 마흔에 ‘땅콩녀’로 거듭난,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씨의 ‘만행’을 사과하는 광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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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위원
진경호 논설위원
“그 어떤 사죄의 말씀도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사과문 첫머리는 그런대로 지금 조씨와 그의 가족의 낭패감을 드러내 보인 듯하다. 한데 그 다음 줄부터 사과문은 엇나가기 시작한다.

“최근 대한항공의 일들로….”

아니, 왜 ‘대한항공의 일들’인가. 조현아씨의 일이고, 좀 더 범위를 넓히면 그를 잘못 가르쳤다고 머리 숙인 아버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일이다. ‘땅콩 회항’을 촉발한 사람은 조현아씨다. 그가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다 해도 그것이 1만명이 함께 일하는 대한항공을 대표하진 않는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가족의 것’이라는 명제도 회사 지분 구조를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씨 일가의 지분은 조 회장 지분 9.36%와 조현아씨 등 세 남매의 지분 3.24%를 합쳐 12%를 조금 넘는 데 불과하다. 조 회장과 세 자녀가 23% 남짓한 지분을 가진 한진칼이 대한항공의 지분 32.85%를 보유하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그들이 대한항공을 ‘지배’하고 있을지언정 ‘소유’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너, 소유주가 아니라 도미네이터, 지배자로 봐야 한다.

나라 밖에서 대한항공 안 타기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대한항공은 사과의 주체가 아니라 외려 조현아씨로부터 사과를 받을 주체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광고문은 “새로운 대한항공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대한항공의 이름으로 끝날 뿐 조현아의 ‘조’ 자(字)도 담지 않았다. 예정돼 있던 광고를 밀어내고 실은 비싼 긴급 광고인지라 비용만 어림잡아 수십억원 들었겠건만, 이 또한 조씨가 아닌 대한항공이 지불했을 게 뻔하다.

환골탈태의 노력을 다짐하는 사과문은 그래서 공허하다. 비난 여론 수위에 보조를 맞춘 조씨의 ‘단계별 사퇴’만큼이나 진실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이 회사는 ‘내것’이고 회사 직원은 장기판의 졸 같은 ‘아랫것들’일 뿐인 재벌가의 천박한 기업관을 바꿀 기회를 조현아씨가 만든 것으로 기록되는 순간일지 모른다. 여부는 조현아씨에게 달렸다. 대한항공이 아니라 제 이름, 제 돈으로 사과문을 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어떨까 싶다.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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