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하늘로 쏘아 올린 신화 속의 신들/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하늘로 쏘아 올린 신화 속의 신들/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입력 2021-10-25 20:24
수정 2021-10-26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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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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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누리호가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엄청난 불꽃과 연기를 내뿜으며 올라가는 누리호의 모습을 보며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는 것일까. 위성을 올리는 그 순간까지 이제 ‘한 걸음’ 남았다고 하니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누리호 발사 일주일 전 중국에서 첫 번째 태양 탐사 위성을 쏘아 올렸다. 예정 수명 3년의 그 위성은 ‘희화호’(羲和號)라 불린다. ‘희화’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여신이다. 열 개의 태양을 낳은 여신 희화는 머나먼 동쪽 바다 밖 하늘까지 솟아 있는 거대한 나무인 부상수 꼭대기에 말갛게 씻긴 해를 올려놓는다. 아침마다 희화는 태양 마차에 그 해를 태우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질주한다. 태양 탐사 위성의 이름으로는 아주 적격인 셈이다.

그뿐인가. 2007년부터 쏘아 올리기 시작한 달 탐사선의 이름은 ‘항아’(嫦娥), 즉 달의 여신이다. 그들의 달 탐사 프로젝트는 ‘항아 프로젝트’라고도 불린다. 항아 5호까지 발사했는데, 2018년 달의 뒷면에 착륙한 항아 4호의 중계위성 이름은 ‘오작교호’(烏鵲橋號)다. 전설 속 견우와 직녀를 이어 주듯 오작교호는 지구와 달의 정보 연동을 실현하는 교량 역할을 했다. 물론 그들은 해와 달의 여신만 하늘로 올려 보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발사한 화성 무인 탐사선은 ‘천문’(天問)이다. 천문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의 작품 제목이다. 신화적 이야기로 가득한 그 작품에서 굴원은 아득한 옛날에 해와 달, 열두 별자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물었다. 그 답을 찾아 탐사선 천문이 화성으로 향했다. 올해 5월에 천문은 화성에 연착륙했고, 탐사 로봇 ‘축융’(祝融)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축융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불의 신이니 붉은 별 화성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일찍이 1970년에 ‘장정’(長征) 1호 로켓에 탑재해 발사한 중국 최초의 위성 이름은 ‘동방홍’(東方紅)이다. 상당히 정치적 느낌을 주는 명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후 1992년 9월 21일 ‘921공정’이라 불리는 ‘중국 유인 우주공정’(China Manned Space)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오래된 신화를 우주에 옮겨 놓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신의 배’라는 뜻을 가진 유인 우주선 ‘신주’(神舟)가, 2017년에는 ‘하늘의 배’라는 뜻을 지닌 화물 우주선 ‘천주’(天舟)가 우주를 향해 대항해를 시작했다. ‘921공정’의 로고는 우주정거장을 형상화했다. 양쪽에 날개처럼 태양전지판을 붙이고 있는 우주정거장의 모습을 ‘중국’을 의미하는 ‘중’(中) 자 형태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마치 로켓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들은 그것을 ‘장자’에 등장하는 거대한 새 ‘곤붕’(鯤鵬)이 날아오르는 모습과 같다고 설명한다. 신화 속의 새에서부터 해와 달, 불의 신까지 모두 하늘로 올려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신들이 머무는 그들의 판테온, ‘천궁’(天宮)이 마침내 등장한다. 2011년 그들은 천궁 1호를 쏘아 올린다. 수명이 다한 천궁 1호는 2018년에 대기권을 거쳐 떨어졌지만, 그들은 또 다른 신들의 궁전을 하늘에 만들었다. 중국 우주정거장이라고도 불리는 또 하나의 천궁은 하늘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2022년 완성되면 10년간 사용할 예정이다. 지난 16일에 신주 13호가 올라가 천궁 2호와의 도킹에 성공했다. 미국과 러시아 등이 주축이 돼 만들고 운영해 온 국제우주정거장이 이미 임무를 다하고 2024년에 운영 종료된다니 이제 저 드넓은 하늘에는 신화 속의 수많은 신을 품은 중국의 천궁만이 떠 있게 될 것이다.

누리호의 발사를 보며 오래된 신화의 세계를 그물망처럼 우주에 펼쳐 놓는 그들을 생각했다. 누리호라는 이름은 매우 낯익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우주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도 계속 이어질 터. 우리만의 ‘서사’를 담을 수 있는 그런 일련의 이름들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2021-10-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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