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대선에서 이기는 법/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대선에서 이기는 법/김상연 워싱턴특파원

입력 2012-11-03 00:00
수정 2012-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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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상대방이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을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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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워싱턴특파원
김상연 워싱턴특파원
몇달 전 한 오찬 모임에서 만난 미국 의회 관계자가 이렇게 물었을 때 ‘오랜 세월 찾아 헤맨 천하의 비방을 드디어 얻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자를 바짝 당겨 앉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선후보 TV 토론을 보고 난 직후 누가 더 잘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됩니다.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잘했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오바마 지지 성향일 가능성이 높고,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잘했다고 답하는 사람은 공화당 지지 성향일 개연성이 큽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이는 법이고, 2000여년 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의회 관계자의 이론을 정설로 치면 딜레마가 생긴다. TV 토론 무용론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제 눈에 예쁜 후보가 더 예쁘게 보이고, 미운 후보는 더 밉상으로 보이는 토론이라면 하나마나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실제로 TV 토론이 표심에 미치는 영향은 과장돼 있다며 ‘회의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하지만 지난달 3일 미 대선후보 1차 TV 토론은 이런 회의론을 보기좋게 날려버렸다. 토론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말의 달인’인 오바마가 압승을 거두리라는 예상에 이의를 다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양상은 정반대로 진행됐고 결국 롬니가 오바마에 ‘KO승’을 거뒀다. 예상외의 결과에 정치 전문가들과 언론은 경악했다. 심지어 제 눈에 고슴도치가 예뻐 보여야 하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오바마의 졸전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날 오바마는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다. 롬니와의 눈싸움을 피하며 줄곧 시선을 내리깔아 비굴하게 비쳤고, 롬니의 가열찬 도전에 야멸찬 응전을 하기는커녕 괜히 히죽히죽 웃었다. 오바마가 왜 그랬는가는 며칠 후 “그때는 내가 너무 점잔을 뺐다.”고 토로한 오바마 본인의 고백에 담겨 있다. 1차 토론 전까지 전국 지지율에서 앞서 있던 오바마는 ‘TV 토론 회의론’에 입각해 롬니와의 멱살잡이를 피하고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보여주는 현상유지 전략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토론 전 미 방송사들은 하나같이 과거 대선 때 TV 토론 화면을 테크닉 위주로 보여주면서 실수하면 안 된다고 강조, 오바마의 오판에 일조했다.

반면 롬니는 토론에서 전혀 점잖지 않았다. 말은 속사포처럼 빨랐고 몸짓은 촐싹거린다 싶을 정도로 경박했다. 토론 다음 날 CNN에 출연한 행동전문가는 토론 녹화 화면을 돌려보면서 “오바마의 몸짓은 몸집 큰 동물 같고 롬니는 작은 동물 같다.”면서 “무릇 지도자는 제스처를 크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론의 향배는 ‘품위는 없었지만 콘텐츠로 무장했던’ 롬니의 대약진으로 나타났다. 미 대선 역사상 그렇게 한순간에 지지율이 크게 뒤집어진 전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롬니 역시 지지율이 앞서자 3차 토론에 가서는 1차 때의 오바마처럼 ‘부자 몸조심’하며 점잔을 빼는 바람에 다시 지지율이 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니가 1차 TV 토론에서 보여준 선전(善戰)은 대선 역사에 중요한 기념비로 남을 만하다. 롬니의 선전은 갈수록 테크닉 위주로 흐르던 TV 토론의 본질을 콘텐츠 위주로 바꿔놓는 데 기여했다. 과거 몇 차례 대선에서 TV 토론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토론이 무용(無用)해서가 아니라 후보 간 열정이 엇비슷했기 때문일 뿐이며, 90분짜리 TV 토론 하나가 천문학적인 돈과 막대한 시간,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는 TV 선거광고나 유세보다 더 결정적이라는 ‘진리’를 롬니의 선전은 깨닫게 해줬다.

만약 카이사르가 오늘날 환생한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열심히 자기를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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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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