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많은 사람들은 연구자들을 오직 자기 분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암 연구가 이제는 단순히 세포나 동물실험 등 하나의 분야에만 몰두하는 연구가 아니라는 것이 잘 나타난다.
암 연구자들은 사회과학연구인 ‘소셜네트워크 연구법’을 암 연구에 적용하고 있다. 세포 안에서는 많은 유전자와 단백질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해 기능한다. 연구자들은 이런 상호작용 중 특별하고 이상한 변화를 보인 유전자나 단백질을 찾고 그 변화만 집중 연구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도 정상세포처럼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이나 전이를 일으키고 약제에 대한 효과나 내성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젠 개별 이상을 넘어서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를 ‘시스템 생물학’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사회관계도처럼 암 세포 안에서도 일종의 지도를 만들 수 있고 나아가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 전체와 개인이 맺는 관계가 신체와 세포가 맺는 관계로, 세포와 유전자가 맺는 관계로 서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딥러닝(심화학습) 기술도 이미 의학연구와 임상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최근 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일부 컴퓨터 영상분석 기술이 인간보다 수행능력이 더 우수했다. 심부전은 해당 기술의 진단 정확도가 97%로 두 명의 병리과 의사가 보여 준 정확도 74%와 73%보다 훨씬 높았다. 또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 이 기술을 적용했더니 폐결절의 악성 및 양성 여부를 2명의 영상전문가보다 5~8% 정도 더 잘 구별했다. 자기공명영상촬영(MRI)에서도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전립선암을 70% 정도 더 찾기도 했다.
딥러닝 기술은 암 연구에서 이미 주류 연구 분야의 하나다.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협회 연례회의에서는 대학이나 연구소 소속의 유명한 암 연구자가 아닌 구글에서 일하는 연구자가 나와 인공지능과 딥러닝 기술을 접목한 병리 판독결과를 보여 줬다.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보다 좋은 영상자료를 얻고 이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판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종양이 갖고 있는 이질성 또는 다양성 때문이다. 같은 환자에게서 얻는 종양 조직조차 모양과 범위가 다르다. 치료에 대한 반응도 차이를 보인다.
영국 맨체스터대에서는 화성을 연구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개발한 영상촬영법과 분석기술을 종양을 찾는 데 썼다. 종양도 화성처럼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을 갖고 있고 치료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암 치료효과 판정능력을 4배 높였다. 암 연구자들이 다른 과학자들이 개발한 기술에 무임승차한 셈이다.
과거에는 한 분야 기술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제는 분야를 넘나드는 기술들이 많아지고 있다. 학제 간 소통도 보다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학문 간 소통, 즉 ‘통섭’을 통한 연구 성과들이 점점 더 많이 보고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는 ‘쓸데없는 지식’이라는 말은 없어져야 할 것 같다.
2018-05-1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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