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아의 일상공감] 집의 재발견/미드웨스트대 교수

[배민아의 일상공감] 집의 재발견/미드웨스트대 교수

입력 2021-09-28 17:34
수정 2021-09-29 02:2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배민아 미드웨스트대 교수
배민아 미드웨스트대 교수
5년 전 딱 이맘때였다. 산자락 동네를 산책하다 폐가로 보이는 낡은 빈집을 만났다. 입구의 잡풀을 헤치고 들어가니 가벽을 세우고 합판으로 천장을 얹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뉜 실내가 문틈 사이로 보인다. 찢어진 장판과 내려앉은 천장, 곰팡이 핀 벽지 등이 방치된 세월을 담고 있었고, 깨진 창문은 들고양이들의 출입구였다. 버려진 물건들을 살피다 집을 등지고 돌아서는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다. 산자락까지 올라오며 흘린 땀을 기분 좋게 식혀 주는 상쾌한 바람과 가까운 산과 먼 산이, 올망한 산동네의 정겨움과 멀리 보이는 아파트촌의 새초롬한 모습이 마주 보듯 펼쳐지고 바탕색을 칠한 듯 보이는 파란 하늘과 몽실구름이 마치 캔버스 안의 풍경화 같았다.

정말 풍경이 다 했다. 곧바로 동네 부동산을 찾았고, 마침 매매를 원하는 집주인과 연결이 됐으며, 아주 좋은 가격에 계약까지 마쳤다. 멋진 집을 상상하며 몇몇 집수리 업체에서 받은 견적은 최소 집 구매 가격의 2배 이상이다. 배보다 배꼽이 커질 판이었고, 대출까지 받아 고칠 여유와 이유도 없었기에 가끔 올라가 풍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니, 큰비가 내리거나 세찬 바람이 분 다음 날이면 행여 집이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점검차 가 보는 것이 일이 됐다. 그렇게 3년을 묵혀 둔 후 때마침 작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상이 일시 정지되고 시간 여유도 생겼을 때 셀프 집수리를 결심했다. 막상 시작은 했으나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집의 면면을 보니 대략 난감이었다. 지인들에게 자문을 하고, 저녁마다 인터넷과 동영상을 통해 집수리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워 하루하루 일을 했다.

화장실도 없어 계단 위까지 정화조를 굴려 올리느라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질통에는 모레를, 지게에는 벽돌을 지고 하루에도 수십 번 계단을 오르내렸던 중년 부부의 고된 셀프 집수리는 4개월 뒤 남자의 몸무게가 12㎏ 빠진 후에야 마무리됐다. 타일 줄눈이 삐뚤어도, 마감재 나무가 수평이 안 맞아도, 샤워 후 덜 빠진 물을 밀대로 밀어야 하는 번거로운 수고가 뒤따라도 대만족이다. 순전히 우리의 활용 목적과 필요에 의해 만든 집, 소재와 내부 구조까지 알고 있는 완벽한 우리의 공간이기에 볼 때마다 뿌듯하고 편안하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며 심리적 안정을 주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서 집의 가치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덕분에 집수리 업계도 호황이다. 온라인 화상 교육이나 미팅으로 사적 공간이 노출되고 재택근무로 집 내부를 기능적으로나 미적으로 수리하려는 욕구가 늘어난 데다 폭등한 집값에 걸맞은 인테리어로 변경하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의미가 점차 확장돼 이제는 집이 회사이고 학교이자 여가활동, 휴식, 취미, 카페, 레스토랑의 공간이 됐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에 관심이 커지고, 집 안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도 커지고 있다. 집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언택트 시대에 개인의 생활 방식에 적합하고 모든 생활의 원천이 되는 맞춤형 복합 문화와 생활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스마트한 첨단 시설이 아니더라도 나의 필요에 의한 공간을 직접 꾸미고 만드는 내 마음대로의 집은 각별한 의미다. 내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가구와 소품들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기쁨이요 힐링이기 때문이다. 공간을 만들며 살이 빠진 남자는 이제 공간을 즐기며 다시 살을 찌운다. 떠나지 않고도 여행지에서 누리던 설렘과 나른함을 즐기고, 하늘을 보며 커피를 마시며, 낮은 조명의 거실에서 직접 만든 요리와 담소를 즐기는 것이 언택트 시대의 소소한 행복이지 않을까.

2021-09-29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출산'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모델 문가비가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결혼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산’은 바로 ‘결혼’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공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산’은 곧 ‘결혼’이며 가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출산’이 꼭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