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窓] 우울증 진단을 위한 유전자 분석/이레나 이화여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생명의 窓] 우울증 진단을 위한 유전자 분석/이레나 이화여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입력 2015-07-24 17:40
수정 2015-07-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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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계 1위다. 우울증은 자살의 중요한 위험 인자다. 우리나라 연구에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자살 사고율이 42배 정도 높았다. 높은 자살률은 그만큼 높은 우울증 이환율(발병률)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서구의 나라들에 비해 우울증이 낮게 집계된다. 세계보건기구와 미국학회가 개발한 CIDI(국제진단면담 도구)로 측정된 한국의 주요 우울 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5.6%였다. 미국의 16.6%, 유럽의 12.8%에 비해 낮다. 같은 동아시아권인 중국도 평생 유병률이 3.5%로 아시아인들의 문화적 배경이 우울증 진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레나 이화여대 방사선종양학 교수
이레나 이화여대 방사선종양학 교수
며칠 전 네이처지에 우울증의 유전자 분석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됐다. 중국 한족 5303명의 재발성 주요 우울 장애 환자들의 유전자 게놈을 분석한 결과 염색체 10번에 있는 두 부위의 유전자가 주요 우울 장애와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유전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이미 임상 경험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인간도 생명체이며 정신 현상도 생명 현상의 하나이므로 생명체의 청사진인 유전자에 단서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은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유전자의 염기서열 분석을 정확하게 해내는 과학과 이를 일일이 해석하는 과학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유전자가 곧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을 설명하는 다양한 층위들 가운데 이제는 유전자 층위의 해석이 활발해지는 세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모든 질병은 사회적 은유를 입고 있다. 그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신경정신과적 질환일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의 우울증이 사회의 부조리와 개인적 환경에 의한 것이며 자신에게 정신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병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여러 층위에서 다각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우울증의 위험 인자로 사회적 배경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생리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현재 시판되는 항우울증 약들은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체내 농도를 조절하는 기전이다. 초기에 약물들이 소개됐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 장애가 약물로 치료된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우울증의 사회적 해석과 신경병리학적 해석은 상충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공존할 수 있다.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약물치료와 사회적 지지가 동시에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울증의 유전자 분석이 시작됐다. 염기서열 분석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오류 확률 0.5% 수준의 더욱 정확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유전자 분석이 가능하다. 이번에 발견된 유전자 부위는 이미 다른 질환에서는 상용화가 활발한 유전자 표적 치료제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우울증에 대한 유전자 약물은 우리에게 어떤 인식의 충격을 가져다줄 것인가. 과학의 발전 속도가 대중의 적응 속도보다 너무 앞서 나갈 때 사회적 혼란과 두려움이 야기될 수 있다. 과학자들의 역할은 연구를 통한 사회 공헌과 더불어 과학 기술의 사회적 적응을 돕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우울증에 대해 더 적극적인 치료를 위한 사회적, 의학적, 그리고 과학적인 해결법이 모색돼야 한다.
2015-07-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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