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이 제3국으로부터 침공받았을 때 이를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일본이 행사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세계적 기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지지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는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일본의 구체적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내 여론은 북핵 위협과 한·미 동맹 등 지역 안보를 고려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는 반대론으로 나뉘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강민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와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에게서 한국의 ‘선택’ 방향을 들어봤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일러스트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贊] 이강민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美, 한반도 유사시에 日지원 원해… 우리 반대로 저지될 문제가 아냐”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미국의 세계 전략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반대한다고 저지될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평화헌법에 위배되는 명백한 위헌인데도 아베 신조 정권이 개헌도 하지 않고 집단적 자위권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의 강력한 희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사실상 일본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 일본과 같이 가겠다는 것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다. 만약 북한의 도발에 의해 한반도에 급변 사태가 발생한다면 한국 단독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
결국은 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미국은 중국군이 북한으로 들어오는 등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빌리기를 원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 우려스럽다고 한·미 동맹에 금이 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 고리가 너무 강하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국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전방위 외교, 등거리 외교라는 것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어느 한쪽의 편을 든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집단적 자위권은 유사시 일본이 한반도에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던 것이다.
1969년 닉슨·사토 공동성명(한국과 타이완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 유지가 일본의 안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 합의)이 발표됐을 때도 중국은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비난했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베 정권은 미국의 집단적 자위권만을 인정한 1997년 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개정해 지금부터 이를 쌍무적 관계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일 외교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미·일 관계는 앞서 나가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변국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전략적인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싫어도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상대국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외교다.
한국 경제는 재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삼성이 미국과 일본의 타깃이 돼 버리면 위험해진다.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등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집단적 자위권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놓고 우선 일본 정부와의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시 일본 국민의 관심은 대단했다. 초기에는 박 대통령이 화면에 등장하면 시청률이 오를 정도로 관심을 가졌었다.
여성 국가 지도자란 것이 어떤 의미에서 일본보다 앞서 가는 부분이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도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열기가 크게 식어 버렸다. 한·일 간 역사 문제는 하루아침에 결말을 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도 우리 스스로 이 문제로 제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역사를 현실 외교에 결부시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 문제는 긴 호흡으로 대처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베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그다음 정권이 더 나으리란 보장은 없다.
최근 타이완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일본, 중국, 타이완 학자들로부터 동아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그 중심은 타이완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도 타이완은 중국,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익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이 어쩌다 타이완으로 넘어가게 됐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反]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日 진정성 있는 반성이 우선돼야… 한반도 관련 땐 韓 사전 승인 필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장기 불황에 시달려 온 일본 국민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염원하는 것에 편승해 아베 정권은 국수주의적 극우정책을 펼치면서 정상국가화와 동맹국 지원을 명분 삼아 재무장과 자위대 역할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재정 위기로 국방비를 줄여야 하는 미국은 국제 정치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큰 중국을 사전에 전략적으로 포위, 압박하기 위해 우군을 찾던 차에 일본이 자천하고 나서자 이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일본에 중국 견제의 역할을 분담시키면서 가능하면 한국도 이에 참여시켜 미국 우위의 질서를 저렴한 비용으로 관리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거나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하는 아세안과 호주도 중국 견제를 위해 이를 지지하고 있다. 급기야 중국의 전략적 동반자인 러시아마저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헌장이 인정한 모든 나라의 고유 권한이라는 차원에서 이를 인정했다. 따라서 현재 일본 제국에 침략당하고 잔혹 행위에 최대로 시달렸던 한국과 중국만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열세이므로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사실상의 군사 강국인 일본에 각국의 고유 권한인 집단적 자위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한국의 국력과 외교력을 소모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 대신 우리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환영할 수 없는 이유를 일본에 당당하게 밝히고 미국 등 우방국들에도 분명하게 설명하면서 일본이 이로 인해 한국의 국익을 훼손하지는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우호적인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협력도 유지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과거의 비행과 잔혹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지역 평화를 위해 적극 기여해 온 독일과 달리 민족말살정책,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강제 징용, 식민지인 생체 실험, 대량 학살에 이르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반성하지 않는 데다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토욕까지 드러내고 있는 일본이 ‘정상국가’가 될 자격이 없음을 명백히 선언해야 한다. 독일처럼 진정성 있는 반성이 이뤄져야 우리도 이를 환영할 수 있다는 점을 공표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미국과 EU, 아세안이 우리가 일본의 군사력과 자위대 역할 강화에 대해 우려하는 것을 잘 납득하지 못하는 점에 주목해 대응책을 취해야 한다. 그동안 일본 지도부는 중국을 필연적으로 지역 패권을 다툴 수밖에 없는 경쟁국으로 간주해 왔고 일본보다 국력이 약한 한국은 대미 의존성이 큰 데다 분단돼 북한과 경쟁하고 있으므로 경시해도 좋은 국가로 생각하면서 사대주의적 기회주의 대외전략을 펼쳐 왔다. 한국을 무시하고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미국에는 사대주의 저자세 외교를 펼치고 EU나 아세안 국가들에는 원폭 피해국이고 평화국가이자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모범국이며 예절 바른 국가로 처신해 왔다. 유대인들이 나치의 만행을 고발해 독일이 사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듯이 국제사회가 일본의 이중인격, 파렴치성과 위험성을 깨닫게 하려면 민관이 협력해 국제인권대회 개최나 영화 제작 등을 통해 일본 제국의 반인륜적 잔혹 행위와 범죄를 고발하는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야 할 것이다.
특히 대미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 일본과 남한을 점령 통치했던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시 일본의 반환 영토에서 독도를 제외해 줌으로써 한·일 간 영토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는 책임을 각성해야 한다. 우리는 미 행정부가 일본에 과거 비행을 진정으로 사죄하고 독도에 대한 야욕을 포기하도록 압박해 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최소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주한 미군 지원과 대북 공격 등 한반도와 관련될 경우는 한·미 동맹의 ‘부속적인 지원’에 한정돼야 하고 반드시 한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독도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미·일 양국으로부터 확약받아야 할 것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일러스트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贊] 이강민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美, 한반도 유사시에 日지원 원해… 우리 반대로 저지될 문제가 아냐”
이강민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북한 문제에 있어 일본과 같이 가겠다는 것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다. 만약 북한의 도발에 의해 한반도에 급변 사태가 발생한다면 한국 단독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
결국은 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미국은 중국군이 북한으로 들어오는 등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빌리기를 원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 우려스럽다고 한·미 동맹에 금이 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 고리가 너무 강하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국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전방위 외교, 등거리 외교라는 것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어느 한쪽의 편을 든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집단적 자위권은 유사시 일본이 한반도에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던 것이다.
1969년 닉슨·사토 공동성명(한국과 타이완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 유지가 일본의 안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 합의)이 발표됐을 때도 중국은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비난했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베 정권은 미국의 집단적 자위권만을 인정한 1997년 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개정해 지금부터 이를 쌍무적 관계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일 외교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미·일 관계는 앞서 나가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변국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전략적인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싫어도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상대국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외교다.
한국 경제는 재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삼성이 미국과 일본의 타깃이 돼 버리면 위험해진다.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등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집단적 자위권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놓고 우선 일본 정부와의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시 일본 국민의 관심은 대단했다. 초기에는 박 대통령이 화면에 등장하면 시청률이 오를 정도로 관심을 가졌었다.
여성 국가 지도자란 것이 어떤 의미에서 일본보다 앞서 가는 부분이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도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열기가 크게 식어 버렸다. 한·일 간 역사 문제는 하루아침에 결말을 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도 우리 스스로 이 문제로 제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역사를 현실 외교에 결부시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 문제는 긴 호흡으로 대처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베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그다음 정권이 더 나으리란 보장은 없다.
최근 타이완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일본, 중국, 타이완 학자들로부터 동아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그 중심은 타이완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도 타이완은 중국,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익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이 어쩌다 타이완으로 넘어가게 됐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反]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日 진정성 있는 반성이 우선돼야… 한반도 관련 땐 韓 사전 승인 필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장기 불황에 시달려 온 일본 국민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염원하는 것에 편승해 아베 정권은 국수주의적 극우정책을 펼치면서 정상국가화와 동맹국 지원을 명분 삼아 재무장과 자위대 역할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먼저 우리는 과거의 비행과 잔혹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지역 평화를 위해 적극 기여해 온 독일과 달리 민족말살정책,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강제 징용, 식민지인 생체 실험, 대량 학살에 이르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반성하지 않는 데다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토욕까지 드러내고 있는 일본이 ‘정상국가’가 될 자격이 없음을 명백히 선언해야 한다. 독일처럼 진정성 있는 반성이 이뤄져야 우리도 이를 환영할 수 있다는 점을 공표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미국과 EU, 아세안이 우리가 일본의 군사력과 자위대 역할 강화에 대해 우려하는 것을 잘 납득하지 못하는 점에 주목해 대응책을 취해야 한다. 그동안 일본 지도부는 중국을 필연적으로 지역 패권을 다툴 수밖에 없는 경쟁국으로 간주해 왔고 일본보다 국력이 약한 한국은 대미 의존성이 큰 데다 분단돼 북한과 경쟁하고 있으므로 경시해도 좋은 국가로 생각하면서 사대주의적 기회주의 대외전략을 펼쳐 왔다. 한국을 무시하고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미국에는 사대주의 저자세 외교를 펼치고 EU나 아세안 국가들에는 원폭 피해국이고 평화국가이자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모범국이며 예절 바른 국가로 처신해 왔다. 유대인들이 나치의 만행을 고발해 독일이 사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듯이 국제사회가 일본의 이중인격, 파렴치성과 위험성을 깨닫게 하려면 민관이 협력해 국제인권대회 개최나 영화 제작 등을 통해 일본 제국의 반인륜적 잔혹 행위와 범죄를 고발하는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야 할 것이다.
특히 대미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 일본과 남한을 점령 통치했던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시 일본의 반환 영토에서 독도를 제외해 줌으로써 한·일 간 영토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는 책임을 각성해야 한다. 우리는 미 행정부가 일본에 과거 비행을 진정으로 사죄하고 독도에 대한 야욕을 포기하도록 압박해 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최소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주한 미군 지원과 대북 공격 등 한반도와 관련될 경우는 한·미 동맹의 ‘부속적인 지원’에 한정돼야 하고 반드시 한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독도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미·일 양국으로부터 확약받아야 할 것이다.
2013-11-27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