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국내 기업부채 보고서
부채 증가율, GDP 성장률 2.5배
비은행권 PF 대출 급증이 원인
부동산 부문 신용공급 쏠림 현상
거시건전성 정책 통해 대응 필요
한국은행이 20일 공개한 ‘우리나라 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기업부채는 2734조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 이후 6년 동안 1036조원이 늘어난 것으로 해마다 8.3%씩 기업대출이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GDP 성장률 3.4%보다 2.5배 빠른 속도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 대비 기업부채 비율도 6년 만에 92.5%에서 122.3%까지 치솟았다.
한은은 기업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 비은행권의 부동산 대출 급증에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해당 기간 새마을금고와 상호금융 등 비은행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기업 대출은 83조원 늘어났다. 위험 관리에 민감한 은행권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가와 오피스 같은 부동산임대업 대출을 175조원 늘렸다.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만 301조원에 달했는데 전체 기업 대출 증가 규모의 3분의1이 부동산 한 분야에만 쏠렸다는 뜻이다.
국내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부채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두드러질 정도다. 2022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부동산 대출 비율은 13.1%(잔액 기준)에서 5년 만에 24.1%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유로(14.7%)를 비롯해 미국(11.3%)·영국(8.7%)·호주(12.0%)에 비해서도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한은은 2020년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시설투자 자금 수요가 늘어난 것도 기업부채 증가에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또 코로나19 위기로 정부의 개인사업자에 대한 금융지원 조치가 늘면서 2017~2019년 연평균 24조원 수준이던 대출이 2020~2022년에는 54조원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한은은 대기업 부문 대출 증가가 반도체와 이차전지 분야에 대한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성격이 뚜렷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개인사업자 대출 역시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분야에 장기간 신용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류창훈 한은 시장총괄팀 과장은 “부실 우려가 큰 PF에 대해서는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부동산 부문의 점진적인 디레버리징(차입 축소)이 필요하다”면서 “향후 국내외 통화정책 기조 전환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신용공급이 부동산으로 쏠리지 않도록 (정부와 통화당국이)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4-05-21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