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 막은 다주택자 중과세 ‘7·10’ 최악… 공급 늘린 ‘8·4’ 긍정적

퇴로 막은 다주택자 중과세 ‘7·10’ 최악… 공급 늘린 ‘8·4’ 긍정적

백민경 기자
입력 2020-08-09 20:00
수정 2020-08-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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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학계 전문가 15인이 평가하는 ‘文정부 23번의 부동산 대책’

문재인 정부가 23번의 ‘집값 대책’을 쏟아 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최근 8·4 대책을 통해 수요 억제 일변도에서 공급 확대로 방향을 바꿨지만 재개발·재건축 층수를 높여 개발이익을 대부분 환수한다는 데 반발이 크다. 공급 가구수 상당수가 허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데다 과도한 지역개발을 놓고 여당 내에서조차 이견이 크다. 서울신문은 9일 업계·학계 부동산 전문가 15명에게 이번 정부 들어 나온 23번의 대책 가운데 오히려 부동산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최악의 대책과 실수요자에게 도움이 됐던 대책 그리고 피해를 입힌 대책들을 물어봤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을 살 때(취득세), 보유할 때(종부세), 팔 때(양도세) 세금을 일제히 높여 퇴로를 옥죄는 바람에 궁극적으로 매물 잠김과 세입자 세금 전가로 전월세 가격 상승을 초래한 7·10 대책을 최악으로 꼽았다. 반면 8·4 대책 중 2030을 중심으로 수도권 요지에 공급을 늘린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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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 비옷을 입고 참석해 ‘임대차 3법 반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 비옷을 입고 참석해 ‘임대차 3법 반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임대차 3법’ ‘6·17’ 최악 부동산 대책 2·3위에

부동산 전문가 15명 중 9명은 최악의 부동산 대책으로 ‘7·10 대책’을 꼽았다. 7·10 대책의 핵심은 다주택자에게 최고 6% 종합부동산세율을 적용하고 취득세도 최고 12%까지 올리는 것이다. 1년 내 주택을 팔 경우 양도세도 70%를 부과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라고 하면서 집을 팔 때나 보유할 때 모두 세금을 올려 다주택자가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게 했고, 이로 인해 매물도 잠기는 등 시장 작동을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상당수 전문가는 다주택자가 매물을 처분할 수 있게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세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주택자 세금 강화 외에 7·10 대책의 또 다른 주요 내용은 등록임대사업자의 혜택을 대폭 줄인 것이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17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다주택자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세제 혜택을 준다고 발표했다가 2020년 7·10 대책 때는 단기임대(4년)와 아파트 장기임대(8년)를 폐지하는 식으로 임대사업자들을 투기꾼으로 몰아세웠다”며 “최근에는 이 대책에서 없애기로 했던 조세 감면 혜택 일부를 다시 되살리기로 하는 등 정책이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내놓은 ‘23번의 대책’에는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지만 지난달 31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역대 최악의 부동산 대책으로 꼽는 이들도 있었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보유세 부담에 따른 집주인의 임대료 전가와 전세대란 분위기 속에서 임대차법 개정까지 맞물려 ‘5%룰’에 해당하지 않는 집주인들이 새로운 세입자에게 전셋값을 확 올린 것이 전셋값 폭등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23번의 대책’이 집값 잡기에 도움이 됐는지 별점 5점 만점으로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전문가 15명이 평가한 점수 평균은 1개 반에 그쳤다.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일시적으로 가격 상승폭이 둔화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더 큰 상승을 이끌었고 비규제지역으로 풍선효과가 번져 나갔기 때문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너무 잦은 대책으로 시장에 내성이 생기고 규제 구멍이 만들어졌으며 이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가 두더지 잡기식으로 땜질 대책을 내놨다”면서 “뒷북치는 정부 정책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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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23번의 부동산 대책들 가운데 실수요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대책으로 공급 방안인 8·4 대책을 꼽았다. 사진은 정부가 신규 택지로 개발하기로 한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골프장 전경.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23번의 부동산 대책들 가운데 실수요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대책으로 공급 방안인 8·4 대책을 꼽았다. 사진은 정부가 신규 택지로 개발하기로 한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골프장 전경.
연합뉴스
●“너무 잦은 대책에 내성 생기고 땜질 대책만”

실수요자에게 가장 도움이 됐던 대책으로는 15명 중 7명이 강남, 용산 등 주요 지역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8·4 대책을 꼽았다. 8·4 대책은 태릉골프장, 용산 캠프킴 등 서울의 신규 택지(3만 3000가구) 개발,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5만 가구), 공공재개발 확대(2만 가구) 등을 통해 13만호 이상의 주택을 새로 짓겠다는 것이 요지다.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는 수도권 주택 시장에 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은 실수요자들이 그나마 반길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그동안 발표해 온 부동산 대책들이 그래도 취약계층 복지에 힘쓴다는 명목으로 임대주택 공급 등 주거 관련 복지를 조금씩 늘려 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지영 소장은 “주택 공급 물량 절반 이상을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와 신혼부부·청년 몫으로 배정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라며 “처음에는 분양가의 20~40%만 먼저 돈을 내고 나머지는 10~30년에 걸쳐 점점 더 사들일 수 있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의 경우도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겐 적은 돈으로 일단 집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8·4 대책이 공급을 싸게 해 준다는 측면에선 실수요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만, 청약 대기 수요로 머무른 젊은층을 중심으로 분양 시장이 과열될 수 있다는 역효과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 사업의 경우 사업 주체인 재건축 조합이 대부분 참여에 반대하고 나서 정부가 잡아 놓은 5만 가구가 허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수요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12·13 대책도 언급됐다. 비록 폐지됐지만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로 당시엔 전월세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실수요자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끼친 것으로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은 ‘대출 규제’였다. ‘2017년 8·2 대책’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울 전역과 과천을 투기과열지구로 묶어 실수요자들은 주택담보대출에 필요한 담보인정비율(LTV)이 70%에서 40%로 대폭 축소됐다. 이로 인해 내 집 마련이 절실한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구매하기 어려워졌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집값 안정을 이유로 대출을 규제하는 것은 결국 무주택자들의 꿈을 뺏는 것”이라면서 “대다수 실수요자가 대출 없이 내 집 마련을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결국 현금 부자들의 잔치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서진형(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 대한부동산학회장은 “부동산은 보통 자기자본 40~50%를 가지고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실수요자들이 큰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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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요자 대출 우대 내 집 마련 보호해 줘야”

12·16 대책에서 9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누른 탓에 9억원 이하의 중저가 아파트로 수요가 몰린 것도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지역도 확대했는데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보니 청약시장까지 과열시켰다는 평도 나왔다. 심교언 교수는 “대출 규제로 투기 수요를 억제하면서도 실수요자는 대출 우대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해 줘야 하는데 투기를 막겠다며 대출을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바람에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2020-08-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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