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업계 성과와 향후 대책
“일본서 안 주면 우리가 만든다” 자신감국산화·공급망 다변화로 생산 차질 미미
정부 핵심소재산업 투자 대폭 지원 큰 힘
포토레지스트 국산화 못해 듀폰과 협력
불화 폴리이미드 코오롱 등서 양산 성공
기업·정부 협력 지속해 국산화 더 늘려야
임대 안내문 붙은 일본차 대리점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서 국내에서 확산한 일제 불매운동이 1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사이 일본의 자동차, 의류, 맥주 등의 국내 소비량이 급감해 관련 업체들이 타격받았다. 사진은 29일 서울 시내의 닛산자동차 판매 대리점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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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난해 7월 대일 의존도가 90% 안팎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불화 폴리이미드 등 첨단소재 3종의 수출을 묶었다. 8월에는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국인 ‘화이트 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도 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기술 자립과 수입처 다변화로 대응했다. 반도체 기판의 불순물을 씻어내는 데 쓰이는 액체 불화수소는 지난해 수출규제 조치 직후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가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를 국산 제품으로 100% 대체했다. 가장 최근의 성과는 SK머티리얼즈가 해외 의존도 100%였던 기체 형태의 초고순도(순도 99.999%) 불화수소 국산화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다. 지난 17일부터 경북 영주 공장에서 기체 불화수소를 양산 중이다.
반도체용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공정에 쓰는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워낙 고난도 기술이 필요해 아직 국산화 전이다. 대신 정부가 투자를 유치한 덕에 미국의 화학소재 기업인 듀폰이 올 초 충남 천안에 포토레지스트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했다. 일본 기업 JSR과 벨기에 연구센터 IMEC가 합작해 설립한 업체로부터 포토레지스트를 들여오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일본이 EUV용 포토레지스트에 대해 수출심사와 승인 방식을 개발허가에서 덜 엄격한 특정포괄허가로 변경하면서 제재가 약해졌다.
또 다른 규제 품목으로 폴더블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불화 폴리이미드도 국산화 성과가 나왔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경북 구미에 생산 설비를 갖추고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SKC도 연간 100만㎡를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를 충북 진천에 갖추고 테스트 중이다.
일본 수출규제의 직접 대상은 아니었지만 당시 ‘소·부·장’이 화두로 떠오르자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업체도 체질개선에 나섰다. 한때 일본 의존도가 92%에 달했지만 미국, 유럽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했다. SK머티리얼즈는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개발에 약 400억원을 투자해 내년까지 충남에 공장을 짓고 2022년부터 연간 5만 갤런 규모의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를 양산한다.
SKC가 284억원을 들여 구축하고 있는 반도체용 하이엔드급 블랭크마스크 라인은 올 하반기부터 본격 양산된다. 블랭크마스크는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새길 때 사용하는 포토마스크의 원재료다. 업계 관계자는 “블랭크마스크는 수출규제 3대 품목은 아니었지만, 일본이 시장에서 주름잡던 소재를 국산화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일부 화장품 업체들도 ‘일본으로부터의 완전한 원료 및 기술 독립선언’을 선언했다. 한국콜마는 국내 원료기업과 손잡고 5년의 연구 끝에 고품질의 식물성 아미노산 계면활성제와 자외선차단제 대체 소재도 개발했다. 기존엔 일본이 독점했던 탓에 불안정한 수급과 단가에 무조건 맞춰 왔다. 코스맥스도 자체 연구소인 ‘소재 랩’을 통해 일본 원료 비중을 전체 10%까지 낮췄고 아모레퍼시픽은 대표적인 일본산 원료이자 피부 미백 성분인 알부틴을 대신할 미백 기능성 소재를 개발해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그랬듯 이번에도 위기를 극복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적극 지원을 했고 기업들은 소재 국산화나 수입처 다변화에 애를 썼다”면서 “하지만 불화수소 등 3종 규제는 수출품의 극히 일부분이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급소가 너무 많은 만큼 이번처럼 민관 협력을 지속해 국산화를 더 늘려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소·부·장 업체가 경쟁력을 갖추고 생태계를 확장하려면 국내 대기업과 거래하면서도 자유로운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2020-06-30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