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전셋값 인상→전세대출 급증’렌트푸어’ 늘어난다

금리 인하→전셋값 인상→전세대출 급증’렌트푸어’ 늘어난다

입력 2014-11-02 00:00
수정 2014-11-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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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 27평형에 사는 회사원 김모(42)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 7천만원을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떻게 7천만원씩이나 올려주느냐”며 하소연했지만, “은행 이자가 자꾸 줄어드는데 난들 어떡하느냐”며 집주인은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 없이 인근 단지의 매물을 수소문한 끝에 지금 사는 곳보다 5천만원 비싼 곳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낡을 대로 낡은데다 집 수리도 되지 않은 아파트였지만 “그 시세로는 이런 집밖에 구할 수 없다”는 중개업소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년 동안 모은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은행 대출까지 받은 김씨는 요즘 아이들 학원비, 외식비, 술값 등을 대폭 줄이는 ‘자린고비’ 생활에 들어갔다.

김씨는 “2년 후에는 또 수천만원을 올려줘야 할 텐데 막막하기만 하다”며 “월급쟁이들은 노후에 대비한 저축은커녕 전셋값 마련도 벅찬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전셋값 인상→전세대출 급증 이어져

초저금리에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르고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해 빚을 늘리는 ‘렌트 푸어’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8월과 10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해 시중은행 예금 금리가 2% 초반 밑으로 떨어진 이후 가을 이사철까지 겹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급속화되는 실정이다.

전세금을 은행에 맡겨 봐야 손에 쥘 수 있는 이자 수익률은 연 2.1∼2.3% 수준이다. 전세보증금 3억원을 은행 정기 예금에 맡겨도 이자는 많아야 월 57만원 수준이고, 그나마 이자소득세 등을 제하면 수중에 남는 금액은 더 적어진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떨어진 금리만큼 재계약 시 전세보증을 늘리게 된다.

전세 대신 월세나 반전세를 원하는 집주인이 늘어 가을 이사철 전세 매물의 품귀 현상까지 겹치면서 전세금은 더욱 급등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국민은행이 매주 집계하는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를 보면 2012년 10월 셋째주 98.7이었던 전세지수는 2년 뒤인 지난 20일 111.9로 13.4% 올랐다. 전세보증금이 3억원인 경우 다음 재계약 시 보증금이 평균 4천만원 오른 셈이다.

계약 갱신 기간마다 급등하는 전세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전세 세입자들은 은행 전세대출에 기대야 한다.

2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6개 국민주택기금 수탁은행(우리·국민·신한·하나·농협·기업)의 은행재원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15조8천억원이다. 지난해 말 대출 잔액 11조8천억원보다 4조원(약 34%) 늘어난 규모다.

전(全) 은행 및 기금 대출은 지난해 말 28조원에서 올해 8월 말 33조원으로 늘었고, 올해 말에는 약 3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주택 구매자금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에 이어 비싼 전세값에 빚을 늘리는 렌트 푸어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반전세·월세 전환도 급증…전셋값 추가 인상 부채질

늘어난 전세보증금을 빚으로 충당하는 대신 월세로 대신 지급하는 반전세 세입자도 늘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32평형 아파트에 사는 자영업자 이모(50)씨는 최근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7천만원 추가하거나 매달 월세 40만원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업자금을 위해 이미 신용대출과 카드론까지 끌어다 쓴 이씨는 추가 대출 여력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월세를 추가로 내기로 했다. 이사를 가려 해도 주변 전세 시세가 이미 오른 데다 마땅한 매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경기가 안 좋아 장사는 잘 안 되는데 다달이 월세까지 내야 하니 이젠 한 달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했다.

이씨와 같은 반전세 세입자는 김씨처럼 전세보증금을 추가로 낸 세입자보다 실질적 가계 부담이 더 큰 상황이다. 전월세전환율이 은행 대출금리보다 크게 높기 때문이다.

전월세전환율은 전세 재계약 시점에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환 비율을 말한다. 이씨처럼 전세보증금을 7천만원 올리는 대신 월세 40만원을 내기로 했다면 전월세전환율은 연 6.86%(40만원÷7천만원×12개월)가 된다.

3분기 서울 시내 보증부전세(반전세) 주택의 평균 전월세전환율은 연 7.2%로, 연 3∼4% 수준인 은행 전세자금 대출금리보다 두 배가량 높다. 실제 7천만원을 연 4% 금리로 대출받으면 월 이자 납부액이 약 23만원으로 월세금 40만원의 절반가량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전세보증금을 올려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월세로 전환하는 수익이 더 크다 보니 월세를 낀 반전세를 제외한 순수한 전세 매물은 부동산 시장에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결국 초저금리 → 전세수익 감소 → 반전세·월세 전환 → 전세 감소 → 전셋값 상승의 악순환 구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민층이 더 타격…”속도조절 필요”

초저금리 기조는 소형 주택을 많이 찾는 서민층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월세나 반전세 전환 현상이 월세금 전환액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형 면적 중심으로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8월과 10월 단행된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해 내년에도 전세금 상승의 악순환 고리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년 서초·강남이나 강동 지구의 재건축 사업장이 본격적으로 이주를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전세난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도 짙다.

초저금리로 임대차 시장에서 이처럼 급속한 구조 변화가 생기고 서민의 고통이 느는 데도 정부는 전세 공급이 수용에 미치지 못함에 따르는 구조적인 현상으로 보고 충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전세·월세로의 전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더라도 서민 고통 완화를 위해 정부가 속도조절과 완충 장치 마련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월세로 사는 사람은 모아 놓은 돈이 없다 보니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한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다”며 “주택 임대시장이 오랜 기간 전세를 기반으로 이뤄졌던 만큼 갑작스런 전세값 상승과 월세 전환으로 서민이 죽어나가는 일을 막으려면 공공이 일정 기간 전세공급을 대신 하는 등의 연착륙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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