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현지화 대기업은 환율영향 줄어…업종별 ‘희비’유통 등 내수업종, 소비진작 효과에 비관적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산업계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누적된 경상수지 흑자와 통화 공급을 늘리는 일본과 유럽의 양적완화 정책이 환율 하락 압력을 높이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근 6년 만에 처음 1,010원대로 진입해, 연말까지 900원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데도 환위험 관리를 하지 않는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당장 실적이 악화되는 등 충격이 커지고 있다.
반면 대기업은 외국 통화로 거래하거나 해외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비중이 높아져, 자동차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환율 영향이 과거만큼 크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수출 중소기업 환율하락 직격탄
환율 하락은 중소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직결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수출 중소기업 94개사 가운데 환율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곳이 91.5%에 달했다.
중소기업계는 올해 환율 손익분기점을 달러당 1,038.1원, 100엔당 1,059.4원으로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환율이 최저 달러당 1,001원, 100엔당 975.7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의 피해가 큰 것은 대기업과 달리 자금 부족 등으로 환위험 관리를 할 수 없어 환차손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 기계 등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인 N사는 최근 원화 절상으로 가격 경쟁력이 낮아져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관계자는 “환변동보험으로 수출액의 70∼80%까지만 적용받고 있어 나머지 수출액에 대해선 환위험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 기계를 수출하는 K사 관계자도 “위안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자금 계획 수립에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중견기업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처지다.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이달 초 359개 수출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4%가 환위험 관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중소·중견 수출업체들은 대부분 비용 부담 때문에 환헤지를 하지 않아 환율이 급락하면 환차손으로 인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대기업 환율 영향 크게 줄어
반면 대기업의 경우 글로벌 경영으로 수출 비중이 과거보다 현저히 높아졌지만 환율 변동의 영향은 눈에 띄게 줄었다.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환위험을 피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다양한 대응 방안이 도입된 결과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전자 업종은 생산·판매의 해외 현지화가 진척돼 지금과 같은 단기적인 환율 변동으로 인한 충격을 거의 흡수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해외 생산 비중이 90%에 달하는 삼성전자는 환율이 상승하거나 하락하면서 완제품의 수출 가격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해외에서 조달하는 부품·설비·원자재 가격이 반대로 오르고 내림으로써 영향을 상쇄한다.
해외 사업을 철저하게 현지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이들 회사의 경우 거래할 때 결제 통화로 달러화 외에 다양한 현지 통화를 사용하는 것도 환위험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철강 업종은 국내 공장에서 대부분의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기 때문에 환율이 하락하면 매출액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외에서 철광석을 수입해 철강을 생산하는 일관제철 체제를 구축한 국내 양대 철강업체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환율 변동으로 인한 영향이 자연 상쇄된다.
환율 하락으로 수출 물량 판매에서 발생하는 손해보다 값싸게 원료를 들여오면서 얻는 원가절감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수출 대금을 환전하지 않고 보유했다가 원료를 수입하는 것도 완충 효과를 낳는다.
건설업계도 해외 공사가 많아 환율 하락으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공사를 수주하면 대금을 한 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공사 진척 상황에 따라 선수금, 기성금, 준공금 등으로 장기간에 걸쳐 나눠 받고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으로 결재 통화를 분산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환율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 건설사들이 이미 자체적으로도 충분한 환 헤지를 하고 있다. 다만 원화 약세가 장기화하면 해외 신규 프로젝트 수주 때 입찰 경쟁력이 낮아지는 등의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환율 변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해운업계도 환율 하락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현대상선은 환율 하락이 당장은 장부상 매출액 감소로 나타나겠지만 매출과 비용의 90% 이상이 달러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환율 변동의 영향이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달러화로 항공유를 구입하고 항공기 리스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항공사들은 환율 하락으로 오히려 이익을 보기 때문에 느긋해하고 있다.
대항항공의 경우 환율이 10원 내려가면 연간 200억원의 추가 이익을 내게 된다.
게다가 원화 강세가 해외여행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여객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환율 하락에 업종별 ‘희비’
환율 변동에 따른 민감도는 업종별로 차이가 있다.
대기업이면서도 환율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가장 큰 곳은 자동차 업종이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75∼80%인 현대기아차는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액이 2천억원(현대차 1천200억원·기아차 800억원) 정도 감소하는 구조로 돼 있다.
현대기아차 역시 미국, 중국, 인도 등 해외 공장을 가동해 해외 생산 비중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국내 생산이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주력 수출 차종의 상당 부분을 국내 공장에서 조달해야 하는 데다,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원·달러 환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원·달러 환율 1,050원으로 예측하고 사업계획을 짠 상태여서 추가적인 환율 학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반해 내수 업종은 통상 환율 하락을 반긴다.
원화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수입 물가를 떨어뜨려 내수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통업계는 내수 경기침체가 깊어 환율 하락로 인한 소비 진작 효과에 비관적인 반응 보이고 있다.
세월호 사고까지 겹쳐 소비 심리가 위축될대로 위축된 상황에서 수입물가가 다소 낮아진다고 곧바로 소비자들이 지갑이 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심리 자체가 수입물가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며 “수입물품 결제는 선적과 시차를 두고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최근 떨어진 환율이 곧바로 반영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 호텔, 면세점 등 외국인 관광객 수요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은 최근의 원화 강세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특히 한일 관계가 냉랭해진 상황에서 엔저(엔화약세) 현상까지 겹치면서 일본인 관광객이 대폭 줄어든 것이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3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은 104만6천여명으로 전년보다 44.9% 늘었지만 일본인 관광객은 60만9천여명으로 지난해보다 14.5% 줄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일본인 관광객은 중국인보다 숙소 선택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일본 관광객 감소의 영향이 크다”며 “다만 중국인 관광객 쇼핑에 더 적극적이라는 점이 이런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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