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장세→펀드 환매 급증→코스피 상승 저지 ‘악순환’
코스피가 2,000 선을 넘자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1조원 넘는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박스권 장세에서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 행렬이 코스피의 추가 상승을 저지해 다시 증시를 박스권에 가둬두는 양상이다.
25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해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 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공모형 국내 주식형 펀드는 1조2천625억원 순유출을 기록했다.
일반주식형 펀드에서 가장 많은 6천8억원이 빠졌으며 기타인덱스 펀드도 2천784억원이 순유출됐다.
K200인덱스에서는 1천942억원이 이탈했고 배당주식형 펀드(-475억원), 중소형주식형 펀드(-571억원), 테마주식형 펀드(-845억원) 등 모든 유형의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이에 따라 국내 주식형 펀드의 전체 설정액은 21일 기준 57조6천937억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연초보다 3조5천억원가량 줄어든 규모다.
시장 전문가들은 박스권 장세가 오랫동안 이어지는 가운데 코스피 2,000이 펀드 환매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오래 갇혀 있다 보니 투자자들이 박스권 하단에 왔다고 여기면 자금을 넣고 상단이 오면 빼는 것”이라며 “현재는 1,950∼2,000 수준의 박스가 만들어져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하자 환매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도 “2011년 이후 코스피가 1,700∼2,100의 박스권에서 움직이면서 투자자들은 코스피가 2,000 이상이 되면 반사적으로 환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수 등락률의 1.5∼2배 수익을 추구하는 레버리지 펀드에서 코스피 2,000 돌파 이후 대규모 환매가 발생한 것도 투자자들이 박스권 증시에서 주가 흐름에 따라 돈을 넣고 빼는 단기 전략을 쓰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14∼21일 ‘NH-CA 1.5배 레버리지 인덱스(주식-파생) 클래스 A’와 ‘NH-CA 코리아 2배 레버리지(주식-파생) 클래스 Ci’에서만 각각 807억원, 668억원이 이탈했다.
증시가 박스권에 갇힌 탓에 펀드 환매가 늘었지만, 반대로 펀드 환매 급증으로 코스피 추가 상승이 막혀 증시를 박스권에 가두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주식형 펀드로는 투자자가 수시로 돈을 입출금하는 자유적립식 펀드가 대세를 이루는 만큼 저가 매수와 고가 매도가 반복되면서 장세를 박스권에 묶어두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4∼21일 6거래일 동안 투신권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천277억원을 순매도해 기관 순매도(9천312억원)를 주도했다.
이 기간 외국인이 1조8천35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는데도 코스피가 2,010대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도 기관 순매도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결국 코스피 추가 상승 여부는 주가를 견인해온 외국인의 순매수세가 펀드 매도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인지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즉, 외국인 순매수와 펀드 환매의 ‘줄다리기’에서 코스피 2,000 안착 및 추가 상승 여부가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외국인들은 지난 13일부터 ‘사자’ 행진을 이어오며 23일까지 모두 2조4천728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순매수했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가 2,000을 넘은 이상 펀드 환매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핵심은 외국인이 그간 바구니에서 줄여놨던 한국물 비중을 어디까지 늘리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