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지분 최대 100%로 확대, 경영·인사 모두 코레일이 권한 행사전문가들 “사실상 코레일 회사, 경쟁체제 무의미”
수서발 KTX 운영회사가 코레일 자회사로 출범하게 됐지만 코레일의 지분을 초기 41%, 최대 100%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면서 경쟁체제의 의미가 크게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정부가 수서발 KTX 철도의 운영권을 독점 운영회사인 코레일이 아닌 다른 회사에 주기로 한 것은 경쟁체제를 통해 거대 부실 공기업인 코레일의 부실과 비효율을 바로잡고 경영효율화로 국민에게 운임료 인하 등의 혜택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새로 만드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에 코레일의 역할을 크게 강화하는데 동의하면서 정부가 코레일의 요구에 ‘백기(白旗)’를 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5일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이르면 다음 주 설립될 수서발 KTX 운영회사를 코레일의 지배권을 갖는 계열사 형태의 출자회사로 출범시키기로 하고 코레일의 지분을 41%로 확대했다.
당초 지난 6월 발표한 정부의 철도산업발전방안에서는 이 회사에 대한 코레일 지분이 ‘30% 이상’으로만 돼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코레일이 2016년부터 매년 10%씩 영업흑자를 달성할 경우 수서발 KTX 운영회의 지분을 최대 100%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해 코레일이 100% 소유할 수 있도록 길도 열어놨다.
코레일의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서발 KTX 법인의 대표이사를 코레일이 추천하도록 정관 등에 명시했다.
사실상 경영은 물론 인사·운영까지 모두 코레일이 갖게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경쟁체제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하헌구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장은 “민간이 참여하고 안 하고를 떠나 코레일의 영향력이 강력해짐에 따라 경쟁이 안되거나 경쟁의 강도가 굉장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운임료나 서비스 측면에서 코레일이 운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 원장은 “오히려 법인이 분리됨에 따라 비용만 더 들어갈 수도 있다”며 “코레일의 구조조정도 흐지부지돼 부채 감축 효과도 누리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철도 경쟁체제 도입 과정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우리가 생각했던 회사 구조와는 다르다.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못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전문가는 “사실상 철도경쟁체제는 무의미해졌다”고 평가했다.
정부(철도시설공단)가 현재 제작중인 호남고속철도 차량 22편성과 광주차량기지를 완공해 코레일에 현물출자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수서발 자회사가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차량과 차량기지 모두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를 모두 모회사인 코레일로부터 빌려써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호남고속철도 차량 22편성은 가액이 7천억여원, 광주차량기지는 2천억여원으로 총 1조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가 공기업이 아닌 코레일의 자회사 형태인 수서발 KTX 회사에 직접 출자를 해줄 수단이 마땅치 않아 코레일에 출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수서발 KTX의 운영 효율성은 무시한 채 코레일의 입장만 신경썼다는 지적이 많다.
코레일에 현물출자가 됨으로써 코레일은 차량구매와 차량기지 설치에 투입한 철도시설공단 부채(50%)도 함께 떠안게 되지만 자산이 증가해 전체적인 부채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코레일 역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물출자를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뿐만 아니라 수서발 KTX 운영으로 인해 수요 전이로 코레일의 경영이 악화될 경우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조항까지 넣기로 했다.
코레일의 요금체계나 서비스 부실로 발생한 손실까지 정부가 세금으로 떠안아야 할 수도 있는 셈이다.
엄태호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토부가 수서발 KTX 회사에 대해 민영화 논란에 시달릴까봐 굉장히 양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쟁이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한 철도 전문가는 “전반적으로 모든 국책사업을 처리하면서 ‘잡음’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는 현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 등의 극단적 상황을 막기 위해 코레일의 요구를 다 들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럼에도 경쟁으로서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서발 KTX 운영 1년 뒤 운임료, 서비스 평가 등을 통해 잘하는 회사에 선로배분을 공정하게 배분할 것”이라며 “코레일이 선로배분에 유리한 입장을 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운임료를 낮추고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와 시민단체 등은 여전히 수서발 KTX의 운영권을 자회사에 넘기는 것이 민영화를 위한 꼼수라고 주장한다.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법인 출자를 결의하기 위해 10일로 예정된 코레일의 이사회를 철회하지 않으면 예고대로 9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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