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설마’…”현실화 땐 세계 경제에 재난”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증액하기 위한 정치권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재무부가 시한으로 경고한 날짜인 17일(현지시간)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초긴장하고 있다.미국 재무부는 그동안 ‘새는 곳간’을 각종 특별 조치를 통해 틀어막았으나 현재 16조7천억 달러(약 1경7천900조원)인 부채 한도가 17일까지 늘지 않으면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이 시한을 넘기고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 원금이나 이자를 내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면서도 일단 ‘설마’ 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지난 11일 기자들에게 “디폴트는 일어날 수 없다”며 “의회는 제때 부채 한도를 올리는 데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분석가들은 협상이 시한 내에, 또는 디폴트가 현실화하기 이전에 타결돼 일단 위기를 넘기면 시장이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은 14일 보고서에서 시한 내 협상 타결 시 4분기 미국 경기 위축이 일시적 둔화에 그쳐 내년 완만한 경기확장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실적 중심의 장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미국 정치권의 교착상태가 이달 말까지 이어져 실제 디폴트 발생 직전에 타협하더라도 4분기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는 커지겠지만 내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유지돼 긍정적 연말 장세가 가능하다고 점쳤다.
그러나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타결 때까지의 변동성은 불가피할 전망이라 시장은 이미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피델리티·블랙록·찰스슈왑·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은 미국 단기 국채를 매도했거나 이달 말 또는 내달 초까지 매수를 삼가고 있다고 밝혔다.
WSJ는 부채 한도 이슈가 금융체계의 취약성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미국 정부의 금융계 내 역할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지난 11일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1% 안팎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는 주말을 보내고 난 14일 오전에는 미국 주가지수 선물이 하락하고 코스피지수·호주 S&P/ASX 200지수 등 아시아 증시도 개장 직후 하락세를 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디폴트에 빠질 경우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빠질 혼란에 대해서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젓고 있다.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스(FT) 등 언론에 따르면 김용 세계은행(WB) 총재는 12일 WB 개발위원회 회의 이후 브리핑에서 “대단히 위험한 순간이 닷새 남았다”며 “(디폴트에 대한)무대책은 금리 상승, 자신감 하락, 성장 둔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디폴트가 현실화하면 “신흥국들에는 재난이 되고, 이어 선진국 경제도 크게 다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이먼 회장도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포럼에서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면 일어날 일에 대한 질문에 “알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이해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에 파문이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1년 벌어졌던 금융 충격과 비슷한 사태가 촉발될 것이라는 관측도 이미 퍼져 있다.
2011년 미국 정치권은 부채 한도 증액을 두고 갈등을 빚다가 8월 디폴트 직전에 가까스로 협상을 타결했으나 곧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미국 증시는 폭락했다.
여기에 유럽 재정위기 악화까지 겹치자 세계 금융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상재 연구원은 내달 초 미국 디폴트가 현실화하면 “금융 교란에 대한 공포감 확산이 불가피한 가운데 내년 경제에 대해서도 불안 심리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2011년 8월과 유사한 충격이 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