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재산권 보호에 일관성없는 모습…미국 기업도 우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 제품에 내려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입금지 조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8일(현지시간) 결정하면서 비난 여론이 예상된다.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월 같은 기관이 애플 제품에 내린 수입금지 판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 제품에 내린 수입금지 판정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미국 대통령이 1987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 행사한 거부권이었던 만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유수 언론이 비판했다.
세계 무역시장에서 자유무역과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를 주창하는 미국이 정작 자국 기업인 애플만 보호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제품의 수입금지 조치에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보호무역주의를 우려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환태평양 11개국과의 무역협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는 더 강력한 지적재산권 원칙을 강조하고 있고,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신흥국과 협상할 때도 이들 국가의 지적재산권 보호가 느슨하다고 불만을 표해왔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때도 지적재산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부 미국 기업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애플 제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당시 이런 자국기업보호와 지적재산권 보호 약화가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을 우려한 바 있다.
미국이 자국 기업의 지적재산권은 보호하고 미국 외 기업의 지적재산권은 보호하지 않는 ‘두 얼굴’을 보여준다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도 해외 시장에서 같은 처우를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위크는 “백악관은 이번 결정으로 애플에 줬던 혜택을 삼성에는 주지 못한 셈이 됐다”면서 “한국은 이를 미국 정부가 ‘편들기’를 한다는 또 다른 증거로 인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IT전문 매체인 슬래시기어도 “미국 기업은 보호하고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비슷한 조처를 하지 않는 결정은 이미 곳곳에서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보기술(IT)업계 모임인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미국 정부의 결정이 나온 이후 공식 트위터에 ‘오바마 대통령이 삼성 제품 수입금지에 거부권을 행사해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의 과거 기사를 링크하며 백악관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대신해 수입금지 여부를 검토한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번 결정을 알리면서 “소비자와 공정 경쟁에 미칠 영향과 각 기관의 조언, 이해 당사자의 주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수입금지 조처가 그대로 진행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는 간단한 성명을 냈다.
애플 제품 수입금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때 표준특허(SEP)는 특허 보유자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방식으로 사용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프랜드(FRAND) 원칙을 강조하는 내용의 긴 설명을 덧붙인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애플 제품의 수입금지가 임박했을 때는 USTR에 서한을 보내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 것과 달리 이번 삼성 제품 수입금지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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