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밀어내기’ 시스템化…노골적으로 진행

남양유업 ‘밀어내기’ 시스템化…노골적으로 진행

입력 2013-07-08 00:00
수정 2013-07-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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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 실태가 피해 대리점주들의 주장대로 회사 전체 차원에서 전방위적이고 노골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결과 드러났다.

8일 공정위가 발표한 남양유업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제품의 수요예측 실패 등에 따라 발생한 재고부담을 조직적으로 대리점에 떠넘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본사→지점→대리점으로 밀어내기 ‘시스템화’

남양유업은 전국의 대리점을 관할하는 18개 지점별로 판매목표를 관리하면서 목표달성 미달이 우려될 때마다 밀어내기를 했다.

조사 과정에서 밀어내기가 확인된 품목은 전체 71개 품목 중 26종이었다. ‘3번더좋은우유’, ‘맛있는우유GT’ 등 시유 제품을 비롯해, ‘불가리스’, ‘이오’ 등 발효유, ‘프렌치카페 컵’ 등 유음료, ‘앳홈’ 주스, ‘드빈치아인슈타인치즈’ 등 주스와 치즈류까지 대부분 제품류를 망라했다.

분유 등 나머지 45개 제품은 밀어내기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밀어낸 물량은 전체 대리점 공급량 대비 20∼35% 수준이라고 피해 대리점주들은 진술했다.

밀어내기 품목은 주로 대리점들이 인기가 없어 대리점들이 취급을 기피하는 품목이거나 신규출시 후 마케팅에 주력하는 품목이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도 있었다.

이런 밀어내기는 분유만 취급하는 35개 대리점을 제외한 나머지 전국 1천849개 대리점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났다.

’떠먹는 불가리스’(유기농) 제품의 경우 매주 1천600박스 이상 생산되는데도 대리점의 일 평균 주문량은 130박스에 불과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 늘 대리점에 떠넘겨졌다.

공정위 서울사무소의 고병희 경쟁과장은 “제품의 수요예측 실패 등에 따라 발생한 초과생산량의 재고부담을 대리점에 전가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대리점 몰래 전산 프로그램 주문량 수정

남양유업 본사의 밀어내기 방식은 대리점별 ‘주문관리’를 통해 이뤄졌다.

주문관리란 대리점이 주문한 사항을 본사가 임의로 수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취급제품의 품목이 많다보니 대리점들이 취급을 기피하는 품목이 발생하면서 회전량이 낮아지자 본사가 임의로 물량 할당에 나선 것이다.

공장과 물류센터, 영업부서가 상시적으로 재고와 주문량 정보를 공유하면서 재고량에 비해 대리점 주문량이 부족하면 지점별로 해당 제품을 추가 주문하도록 했다. 밀어내기가 시스템화된 것이다.

물량의 임의 할당은 전산시스템 조작을 통해 이뤄졌다.

대리점이 오후 12시 10분 전산주문을 마감하고 주문량이 목표량에 미달하면 지점 영업사원이 이를 일방적으로 수정해 입력했다.

2010년부터는 전산프로그램을 수정, 지점의 물량 수정 후에는 대리점의 최초 주문기록이 삭제되고 최종 주문량만 나타나게 해 밀어내기 사실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대리점의 대금결제도 신용카드로 이뤄지게 해 납부지연이나 대금반환 요청을 사실상 차단했다.

대리점 입장에서는 주문도 하지 않은 물량 대금을 카드사가 먼저 본사에 대납하고 대금을 청구하는 셈이다. 이를 납부하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위험이 있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청구액을 낼 수밖에 없었다.

회사 방침상 반품은 거의 인정하지 않아 물량 밀어내기의 피해는 고스란히 대리점이 떠안아야 했다.

지난해 기준 남양유업의 반품 규모는 전체 매출액의 0.3%인 40억원에 불과했다.

남양유업은 법률자문과 내무검토 보고서를 통해 대리점에 대한 주문할당이 위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지속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과잉 제재 논란 가능성 남아

공정위는 막말 파문 이전에 남양유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대리점 7곳이 막말 파문이 불거지기 지난 1월과 4월 남양유업 본사가 2008∼2012년 시유 제품을 대리점에 강매했다며 공정위에 두 차례 신고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피해 범위를 사건을 신고한 대리점과 신고 품목에 한정하지 않고 직권으로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갑을 관계’의 문제가 남양유업 사태로 사회 이슈화되면서 신고 내용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조사를 펼친 것이다.

실제 신고사건의 경우 불공정 행위 과징금 액수가 100억원대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공정위는 지난 2월 국순당 본사의 대리점에 대한 거래상 지위남용 사건에서 신고대리점에 대해서만 피해 범위를 국한해 과징금을 1억원만 부과한 바 있다.

공정위는 적극적인 조사로 물량 밀어내기 외에 판촉사원 인건비를 대리점에 부당하게 전가한 사실도 혐의 사실에 추가했다.

한편 과징금 수위 정당성을 두고 법원에서 제동을 당할 가능성도 수도 있다.

남양유업 본사 입장에서는 영업목표 달성을 위한 정당한 경영 활동이라고 반론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신고 대리점 이외 나머지 대리점에도 물량을 밀어냈다는 증거를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2008년 현대자동차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대리점에 판매목표를 할당했다며 공정위가 과징금 215억원을 부과한 것과 관련, 서울고등법원은 과징금 부과가 위법하다며 현대차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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