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ㆍ사외이사 권력화 막아 지배구조 개선

CEOㆍ사외이사 권력화 막아 지배구조 개선

입력 2013-06-17 00:00
업데이트 2013-06-1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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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이사제, 사외이사 임기제한 등 ‘알맹이’ 빠져 효과 의문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 이사회 역할에 ‘메스’ 들이대기로 한 것은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최고경영자(CEO)에게 권한이 집중되거나 사외이사들이 스스로를 권력집단으로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CEO 후보를 추천하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을 이사회의 역할로 명문화 하고 이사회 구성원의 과반을 차지하는 사외이사의 활동 내용을 누구나 조목조목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CEO와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는 방안이나 예금자 대표 등을 ‘공익이사’로 두는 방안처럼 강력한 규제 수단은 빠졌다. 이에 따라 지배구조 개선안을 토대로 제정될 모범규준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 CEO·사외이사 권한집중 막는다

금융위가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통해 이사회의 역할에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은 현재 경영진과 이사회 간 사이에 ‘견제를 통한 균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대부분의 금융지주사 이사회는 주요 의사결정을 경영진 판단에 의존하고 있어 CEO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구도하에서는 CEO의 오판이나 부정행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이사회가 위험관리 정책을 세우고, 경영진의 회사 자산 유용 등 이해상충 행위를 감독하도록 했다.

경영진이 회사를 사금고화하는 등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해칠만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이사회에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지배구조 교체기에 혼란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설치하거나, 회추위 설치가 어려운 중소형 금융사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로 바꿔 CEO 후보 추천과 검증 역할을 맡도록 했다.

대형 금융사는 이미 이사회에 비상설기구로 회추위를 갖추고 있지만 역할이나 권한이 명문화돼있지 않아 운영 실태가 제각각이다. 중소형 금융사는 아예 회추위를 꾸리지 않는 곳도 있다.

다만 이사회의 CEO 승계원칙 수립과 CEO 후보 추천 과정은 상세하게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는 또 이사회와 별도의 금융사 내부기구인 ‘집행위원회’를 설치해 경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맡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통상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외이사들의 책임을 강화하는 장치도 이번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에 포함된다.

사외이사들이 상호 추천으로 연임하면서 ‘권력기구화’하는 단점을 보완하고 친(親) 경영진 성향의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우선 매년 이사회가 사외이사에 대한 신임평가를 실시하고 2년마다 1번씩 외부평가를 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사외이사들의 보수는 차별화된다. 지금까지는 사외이사들이 같은 보수를 받았지만 앞으로는 활동 내역과 책임정도를 따져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기로 했다. 사외이사 개인별 활동 내용과 보상 규모도 공시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사외이사가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연간 수천만원의 보수를 받거나 임기 내내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만 던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노동조합 등 일부 금융사 노조가 시도했다 실패한 사외이사 외부추천제도는 더욱 활성화된다. 주주제안권 행사 요건을 완화해 소액주주들이 힘을 모아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 공익이사제, CEO·사외이사 임기제한 다 빠져

이번 선진화 방안에 그간 논의됐던 공익이사제나 CEO·사외이사의 임기 제한 등 강력한 규제는 모두 빠졌다.

획일적인 규제 도입보다는 지배구조 정책과 운영에 대한 연차보고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정보공개의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금융사의 자체검증과 시민 감시로 관행 개선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측은 “지배구조 문제에는 정답이 없고 개별 회사의 특성에 따라 다양성이 존재한다”며 “이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범위에서 최소한의 기본 원칙만 제시했다”고 전했다.

CEO나 사외이사의 권한을 직접적으로 제한할 경우 지금보다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강력한 규제가 빠진 이유다.

하지만 자율적으로 규정을 준수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그 이유를 밝히도록 하는 ‘원칙 준수-예외 공시’(comply or explain) 체계하에서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2010년 만들어진 은행권 사외이사 모범규준은 사외이사 임기를 3년으로 하고 1년씩 2번 연임할 수 있도록 했지만 대부분의 사외이사는 활동 내용과 관계없이 5년까지 연임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따로 있어도 CEO와 지연이나 학연으로 얽힌 사외이사가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진의 결정에 ‘예스맨’을 자처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기업 지배구조 원칙을 관리하는 ‘지배구조 운영 위원회’를 시범적으로 꾸리는 것을 검토하는 등 앞으로 제도개선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보완과제를 발굴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모범규준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중장기 과제도 검토하겠다”며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확대하고 지배구조 외부 전문 평가기관을 활성화하는 등 앞으로 여러 가지를 보완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 전문가들 “실제 경영현실과 괴리…관치 강화 우려도”

전문가들은 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안이 현재의 행태보다 진일보한 점이 많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방영민 삼성증권 부사장은 이날 은행회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이사회 안에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설치한다고 하는데 이는 대주주(오너)가 있는 금융회사에서는 사실상 힘들다”고 꼬집었다.

방 부사장은 “사외이사를 감독기관이 평가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역시 오히려 관치의 가능성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경호 매일경제 논설위원도 “사외이사의 활동 내역과 보수를 공개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사외이사를 정부·정치적인 요인으로 선임해왔던 관행을 깨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조명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가지지 못한 경우는 연임과 관련이 크다”며 “연임 대신 단임제도로 가면 어떨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사 내부에 이사회와 별도로 집행위원회를 설치해 경영을 맡긴다 하는데, 이사회가 실제 경영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사는 “당국은 CEO의 권한이 과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방안을 세웠는데 그간 과도한 CEO 권한 때문에 시스템적 리스크가 발생한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를 분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번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 테스크포스(TF)에 참여한 양일수 삼일회계법인 전무는 “개선안의 성패는 방안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를 지키게 하는 것에 달렸다”며 “지배구조 선진화 노력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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