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MF사태는 국가 재난”…형평성·도덕적 해이 논란
정부가 외환위기 당시 기업대출 연대보증 채무로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가 된 11만명을 구제하기로 한 것은 국가적 재난상태에서 ‘주홍글씨’가 찍힌 이들에게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돌려주기 위해서다.빚을 갚겠다는 의지가 있지만 능력이 부족한 신용대출 차주(借主)들에게 국민행복기금 혜택을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2003년 카드사태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어려움을 겪은 다른 연대보증자와의 형평성 논란이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IMF 낙인 지운다”…연대보증 신용불량자 11만명 선별 구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기업이 줄도산하면서 연대보증에 묶여 신용불량자가 된 이들 중 일부에게는 그 기록이 아직도 ‘꼬리표’처럼 붙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3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IMF 때 사업실패 등으로 금융거래 자체가 막혀서 새로운 경제활동을 못 하는 국민이 많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부도율이 급등한 1997∼2001년 연대보증 채무를 졌다가 아직까지 불이익정보가 등록된 사람이 1천104명인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에 연체된 보증채무를 아직 상환하지 못해 개별은행에 기록이 남아있는 사람도 11만3천830명에 달한다.
은행연합회 전산망에서는 7년이 지나면 연체 기록이 폐기되지만 이들은 개별 금융기관의 추심 대상이 되고 금융거래 때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금융위는 기업 도산으로 지게 된 연대보증 채무로 약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곤란한 이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변제 능력을 넘어서는 무거운 빚을 장기간 짐으로써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은 “채무불이행 상태인 사람이 채무조정을 통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므로 일부 언론이 쓴 ‘사면’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무불이행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자는 뜻으로, 행복기금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논란 고조…”신용회복 시스템부터 강화해야”
하지만, 일각에서는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 논란이 들끓고 있다.
우선 지원 대상을 1997∼2001년 도산한 중소기업의 연대보증 채무자로 한정한 데 대해 적지않은 지적이 제기된다.
2003년 카드 사태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국가적으로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연대보증 채무를 지게 된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은 지원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이해선 금융위 서민금융정책조정관은 IMF 사태는 카드대란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다르다며 기업 연대보증 채무자 지원 대상을 더 넓힐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 조정관은 “(1997∼2001년이) 우리나라의 역사상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이고 이 기간의 어음부도율이 다른 기간보다 훨씬 높다”며 “이 시기 이후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은 행복기금이나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IMF 사태 직전인 1996년 어음부도율은 0.17%였지만 1997∼2001년에는 줄곧 0.38%를 넘었다.
채무감면율에 대한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행복기금은 원금의 최대 70%까지 탕감해주지만 이번 연대보증 채무조정은 따로 원금 탕금 상한을 두고 있지 않다. 원칙적으로 행복기금과 같은 70%를 탕감한다는 입장이지만 캠코 내 채무조정심의위원회에서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빚 탕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70% 이상도 가능하다.
특히 앞으로도 정부가 직접 나서 빚을 정리해주는 정책을 펼 것이라는 기대감에 빚을 갚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 논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신용회복 시스템 자체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체계적이고 효율성 있는 신용회복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해도 ‘괴롭히기 식’ 추심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듯이 아직 한국의 신용회복 시스템에 미비점이 많다”며 “신용회복 시스템 자체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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