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것은 양호한 재정건전성과 우리 경제의 강한 회복 능력 때문으로 보인다.
무디스가 우리나라를 ‘더블 A’ 등급에 올린 것은 역대 최고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의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무디스, 재정건전성과 경제회복력 호평
무디스는 27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한 단계 올리면서 양호한 재정 건전성(Strong fiscal fundamentals)을 그 이유로 먼저 꼽았다.
재정이 양호한 덕분에 비상 시 국내 위험요인과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여력을 상당히 갖췄다는 것이다.
한국은 외부 충격에 강한 회복력을 보여왔다고 무디스는 평가했다. 비록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세계 경제의 둔화로 다소 부진할 수 있지만, 수출 경쟁력이 있기에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 급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거시건전성 규제로 은행의 대외 취약성이 완화된 점도 높이 평가받았다. 무디스는 정부의 거시건전성 규제와 리스크 관리 개선으로 은행의 대외 부채 대비 단기 부채 비율이 감소하고 예대율 역시 건전한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북한 문제는 한미 동맹 등을 바탕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것으로 봤다.
무디스는 나아가 ▲은행의 대외자금 조달 여건 안정성 ▲공기업 부채와 가계부채의 정부 우발채무 전이 가능성 ▲경제 펀더멘털상의 경쟁력과 장기 성장전망 등이 개선되면 등급을 추가로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재정위기로 주요 국가의 신용등급이나 등급 전망이 줄줄이 강등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신용 등급이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올해 들어 신용등급이 A 등급 이상 국가 가운데 무디스가 등급을 개선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상향 조정이 단순히 신용등급이 한 단계 올랐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레벨’ 자체가 상승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A’ 등급은 신용도가 높으나 예외적으로 금전적 의무이행 가능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면 ‘더블A’는 신용도가 높다, ‘트리플A’는 신용도가 매우 높다는 뜻이다.
◇대외 자금조달 비용 연간 4억달러 감소 기대
기획재정부는 이번 상향 조정으로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 등의 국외 자금조달 비용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했다.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가산금리가 떨어져 이자비용이 줄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시장 관계자의 의견을 종합해 등급이 한 단계 오르면 연간 이자비용이 4억달러(4천540억원) 절감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주택금융공사와 같은 정책금융기관의 신용등급도 같이 오른다.
여기에 대외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가 높아져 민간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지는 무형의 효과도 있다.
이번 상향조정이 일본이 독도 문제로 통화스와프 규모를 축소할 의향을 비추고 한국 국채 매입 계획을 유보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일본 압박이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은 실질적으로 없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했지만 한ㆍ일 간 긴장에 따른 불안감은 적잖았다.
무디스가 지난 4월 우리나라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린 데 이어 4개월 만에 신용등급을 전격 상향 조정해 우리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덜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로존 위기 지속하면 韓 성장률 2.5%로 떨어질 수도
무디스는 유로존 위기가 계속되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이전 전망치보다 더 낮은 2.5% 내외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인데, 유로존 경기 침체가 중국 경제성장세 둔화와 함께 우리나라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꼽히는 가계부채는 증가세가 억제된다면 당장 위험요인으로 부상할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디스는 가계부채로 인한 민간소비지출의 감소를 더 우려했다.
무디스는 아울러 공기업 등의 우발채무가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거나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나 군사충돌 등 대북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것 등을 향후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꼽았다.
◇S&Pㆍ피치의 등급평가에 긍정적 영향 줄 듯
무디스의 이번 상향조정으로 무디스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역대 최고의 신용등급 평가를 받았다. 기존 최고 등급은 ‘A1’이었다. 1990년 4월 A1 등급에 올랐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Ba1’으로까지 추락했다. 이후 단계적으로 등급이 회복돼 2010년 4월에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무디스가 현재 Aa3에 올려놓은 국가는 중국과 일본,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이들 국가와 동급이라는 뜻이다.
특히 무디스가 다른 신용평가사와 달리 우리나라를 ‘더블A’ 등급으로 가장 높게 보고 있어 앞으로 S&P나 피치의 신용등급 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용등급 평가가 회사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대개 비슷한 점수는 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A로, 신용평가사 3사 중 가장 낮은 점수를 주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AA-’ 등급을 매겨 우리나라와는 두 단계 차이가 난다.
무디스가 이번에 우리나라를 중국, 일본과 동격으로 올려놓은 탓에 S&P도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의 두 단계 밑으로 계속 둘 수는 없는 처지에 놓였다.
피치는 한국을 중국과 일본과 같은 ‘A+’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우리나라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려 등급 자체의 상향 조정이 기대되고 있다. 통상 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올리면 6개월에서 1년 내에 등급을 상향 조정한다.
하지만, 피치로서는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보다 더 위에 두는 것이 부담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무디스가 등급 전망을 올리고 4개월 만에 등급을 올린 것에 비해 피치가 등급 전망을 올린 지 9개월이 지났는데도 등급 조정 움직임이 없는 것은 이런 고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상향조정은 재정건전성과 위기대응 능력 등 현 정부의 경제운용이 객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음을 의미한다”며 “무디스가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명실상부한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고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국내로 외화유입이 증가해 원화가치 절상 효과 생긴다”며 “외환안전성 확보되고 시장안전성이 생기면 외부충격 시 자본유출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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