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수집 붐(두만강 7백리:3)

골동품 수집 붐(두만강 7백리:3)

김윤찬 기자 기자
입력 1995-03-11 00:00
수정 199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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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 팔면 큰돈 번다”달려들어/연변주변엔 고대유물·발해고분 널려/달러 갖고 강 건너가 북 유물 밀반출도

화룡에서 숭선까지는 90㎞가 떨어졌다.노과진에 이르고 나서부터 국도는 두만강을 따라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가면서 오른쪽은 절벽이요 왼쪽은 두만강인데 벼랑 중간 못미쳐서 펌프물을 자아내듯 하는 작은 폭포가 조용히 떨어지고 있다.얼핏 보기에 엉덩이를 길쪽에 돌려대고 소변을 보는 형상이다.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이 절벽을 외설스럽게 개 무슨바위라고 불러왔다.그러나 요즘은 그냥 개바위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여놓았다.

1993년8월 이 바위 밑으로 국도를 낼 때 세개의 완전한 공룡화석을 발견했다고 한다.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먼 옛날 연변땅에 털코끼리가 산 것으로 되어 있다.그런만큼 공룡화석 발견은 고고학연구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됨직한 일이었다.그 공룡화석이 숭선진 남석촌 최진을씨한테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연변박물관에서 팔라고 해도 한국사람한테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 거절했다는 이야기와 함께….나는 물어물어 최씨를 찾아갔다.

최씨는 뒤울안에서 허름한 종이상자를 들고 나오더니 그 속에서 공룡이빨화석 한조와 턱뼈 하나를 꺼내 보였다.이빨의 길이는 40㎝,너비는 10㎝,높이가 15㎝이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밭고랑같이 패어들었다.두 이빨 사이 거리는 40㎝정도였다니 주둥이의 크기가 한아름이 실했을 것이다.턱뼈는 너비가 15㎝,길이가 22㎝,굵기가 7㎝나 됐으나 완전하지 못했다.

『이나마 건진 거이 다행입네다.도로 일꾼들이 막무가내 바수어대는 걸 빼앗아왔디요.큰 일을 치를 뻔했수다.일꾼들 말을 들으면 애초 크기는 10m가 넘었다고 기래요.허리가 휘유둠한 거이 똑 올챙이 같았다고 합데다』

○공룡이빨 소중히 보관

최씨가 공룡화석을 발견했다는 전갈을 듣고 도로 작업현장에 달려갔을 무렵에는 이미 화석이 몇 동강 박살이 난 뒤였다는 것이다.뼈를 가루내어 먹으면 만병통치라는 말에 공룡화석은 해머로 맞고 불에 그을리기를 여러 차례.그렇게 서너시간 수난을 겪었다.최씨는 가까스로 턱뼈 일부와 이빨 몇점을 건졌다.그런데 최씨는 이화석을 한국인 골동품상에 팔면 큰 돈을 번다는 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연변 도처에서는 석기시대 돌도끼·돌자귀 등으로부터 철기시대 유물,그리고 발해시대 유물들을 주워올 수 있었다.내가 태어나 22년을 살아온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에는 발해시기 무덤들이 수없이 많았다.70년대초까지만 해도 발해 선조들의 해골이 대굴대굴 굴러다녔고 도자기며 동거울이며 장식품들이 발길에 차일 정도였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유인철이란 사람이 자연보석구슬을 얻었다.유리알처럼 투명한데 하늘에 대고 보면 기와집 앞으로 강이 나타난다.빙빙 돌리면 강물이 흐르고 돌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물살이 세찼다.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는데 아마 두만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다.

상화촌에서는 갑옷을 주워왔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마을에 병이 성했다.노인들이 갑옷을 파왔기 때문에 옛 장수가 노하여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해서 점쟁이를 불러다 방책을 하고 갑옷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상화촌 허정윤(64)노인은 돼지우리를 짓느라 돌각담을 파헤치다가 석기를 발견했다.돌이 좋은지라 숫돌로 썼는데 물에 숫돌을 넣으면 「웅…」하고 벌이 이사하는 소리를 내더란다.유물들이 큰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올해 찾아보았더니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역사유물에 대해 이만큼이라도 깨닫게 해준 것은 한국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 수교뒤 붐 일어

1992년부터 한국의 골동품 장사꾼들은 중국대륙을 휩쓸고 다니며 골동품에 대한 계몽운동을 일으켰다고 할까….옷보따리를 꿍쳐메고 두만강을 건너가 명태며 오징어며를 힘겹게 지고 가서 팔던 일부 조선족은 골동품을 밀수하기 시작했다.강건너 북한땅 민간에 수장되어 있는 오랜 병풍이며 도자기며 심지어는 장롱 따위도 들여왔다.그리고 나서 고려 청자·조선 백자·고서화 등이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어떤 한국인은 호주머니를 두둑히 채워와서 조선족을 도와준답시고 자금을 대주기도 한다.자금이 많든 적든 한국인이 돈을 대고 중국 조선족이 몸을 던지게 마련이다.돈을 받은 조선족 선봉장들은 달러를 가지고 강을 건너가서는 골동품을 사온다.이런 물건들은 야밤 두만강 도하작전으로 옮겨지기도 하지만 통 크게도 백주에 해관을 통해 운반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국의 G실업(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3 D빌딩) 대표라는 김모씨(43)는 19 94년 벽두부터 연변을 넘나든 한국의 골동품상인.그의 말에는 미더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벌써 20여년간 골동품과 벗해 살아왔다구.한국에서 나만큼 골동품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봐야겠지.몇해전에 우리 집에 도난사건이 나 귀중한 골동품 40점을 잃어버렸다구.그 다음부터 골동품과 멀리 했었어.이번에 다시 시작한 것은 국회의원으로 계시는 우리 신우형님의 정치자금 때문이지 뭐야.김영삼 대통령이 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정치인들이 곤경에 빠졌어.골동품으로 차기 국회의원 선거비자금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라구』

○일본경유 대거 유입

골동품 장사꾼들은 대개 사기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연길시 하남가의 한 사람은 북조선으로 친척방문을 갔다가 조선시대 백자를 사왔다.그런데 한국인한테 팔려고 감정을 해보니 한국에서 요새 만든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골동품 붐이 일자 한국의 골동품 장사꾼들이 가짜를 만들어 일본을 경유하여 북한으로 보내 중국에 팔았다는 것이다.가짜가 어찌나 횡행하였든지 세계적 명품의 바이올린도 연변에 3개나 굴러다녔다.

하여튼 골동품 붐은 한국인,중국 조선족,북한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반목을 몰고오고 있다.<사진=김윤찬 기자>
1995-03-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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