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좌담(심층분석 농수산물유통)

전문가 좌담(심층분석 농수산물유통)

입력 1994-05-15 00:00
수정 1994-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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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정 복 조교수 (52·고려대 농업경제학과)

김 정 기연구원(47·농촌경제연구원 유통경제연구부)

양 춘 우부회장 (57·농수산물시장 지정도매인협회)

이 정 수사무국장 (40·농산물중매인조합연합회)

농수산물의 유통구조를 바로 잡는 일이 발등의 불이 됐다.이른 바 「농안법 파동」으로 잠시나마 농민들은 판로를 잃었고 소비자 가격은 몇 배나 뛰었다.다행히 진원이 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의 시행을 6개월 유보함으로써 파동은 가라앉았다.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파동을 계기로 유통구조 개혁의 길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로부터 문제점과 대책을 들어봤다.<편집자주>

◎“직거래 확대 등 물류채널 다양화를”/「도매시장」 운영에 상인·농민 참여해야/농수산물 등급화·표준화·규격화 시급/「재래시장」 흡수 서두르면 부작용 심각/값싼 외국산 수입홍수 대비,농업구조 개선과 연계해 다뤄야

▲정복조교수(고려대 농업경제학과)=중매인들이 중개를 거부함으로써 도매시장 기능이 일시에 마비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이번 사태로 농민들은 3백억원 가량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됩니다.소비자 가격도 한 때 5∼6배가 뛰었습니다.이번 사태를 보면서 저는 유통구조를 점진적으로 개선해야지 한꺼번에 고치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국민 개정안 주목

▲양춘우부회장(농수산물도매시장 지정도매인협회)=당사자의 한 사람으로 파동을 겪으며 도매시장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큰지 정말 놀랐습니다.생산자와 소비자 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에까지 충격을 주었습니다.국민의 시선이 개정 농안법에 쏠려있으므로 도매시장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그동안 관료나 도매시장의 종사자가 제 할일을 했는지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정교수=평소 농업법에 관한 전문가가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앞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하루 빨리 양성돼야 합니다.이번 파동도 법이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기 때문에 빚어졌습니다.

▲이정수사무국장(농산물중매인조합연합회)=우리 중매인연합회는 지난해 법이 개정된 뒤 줄곧 재개정을 요구했습니다.「시행유보」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비록 우리 연합회의 힘이 미약하지만 국회 정부 학계 등에 문제점을 미리 다 얘기했습니다.국민 전체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법인데도 정작 여론수렴 등의 절차를 무시하고 덜컥 개정한 것이 화근입니다.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법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판로 좁아져 불리

▲김정기연구원(농촌경제연구원 유통경제 연구부)=저는 이번 파동을 「사건」으로 봅니다.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상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뿌리깊은 유교적 전통 때문인지 몰라도 이 파동은 상인의 역할을 너무 과소 평가한 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미국의 팔버교수는 최근 농업을 「하느님도 두려워하는 산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산업이라는 뜻이지요.앞으로는 상인의 역할을 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정교수=그렇습니다.상인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이사무국장=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대통령께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은 곧 장사를 잘 하자는 표현과 통하는 것 아닙니까.농수산물 거래량의 70%를 좌지우지하는 재래시장과 위탁중매인들도 있는데 모든 것을 도매시장의 중매인 잘못으로 치부하고 있어요.문제의 핵심을 못 짚은 것이지요.

▲양부회장=중매인의 판매행위를 금지한 개정 농안법의 입법취지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그렇게 되면 유통과정이 한 단계 줄어드니까요.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농수산물 같은 신선식품은 도매시장의 모든 조건이 완전히 갖춰져도 산매상의 의뢰를 받는 단순 중개만으로는 모두 처분되지 않습니다.아무리 완벽한 중개가 이뤄져도 잔품은 남게 마련이니까요.

▲이사무국장=동감입니다.저희 중매인들은 개정된 농안법이 중매인의 존재가치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중매인의 판매행위를 금지했다고 해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유통단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그렇게 되면 현재중매인들이 처분하는 70∼80%의 물량이 재래시장 등으로 흘러가 지금보다 더 무질서하게 거래될 것 아닙니까.훨씬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2원적 체제 문제

▲정교수=농수산물의 유통구조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도 많습니다.이론적으로는 유통단계가 줄면 능률적입니다.그러나 직거래를 해도 소규모 물량을 취급하는 경우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농수산물의 특성 때문에 유통비용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물론 유통단계를 줄이지 말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양부회장=매매참가인 제도에도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농안법의 새로운 내용의 하나가 매매참가인에 「소매업자 협동조합」을 포함시킨 것인데,일본 오다도매시장의 경우 중매인은 2백16명이고,매매참가인은 2천6백명이나 됩니다.그런데도 이 도매시장 거래량의 80% 가량을 중매인이 소화합니다.정부도 매매참가인들이 전문성을 지니지 못해 거의 유명무실화되다시피 한 현실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사무국장=저는 매매참가인을 두는 것을 중매인과 경쟁시키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이번에 매매참가인에 「소매업자 협동조합」을 포함시킨 것은 중매인의 역할을 줄이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교수=물론 중매인의 전문성을 인정합니다만 일부 부도덕한 중매인들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김연구원=중매인의 판매행위를 금지한 것은 중매인의 소유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부인한 것입니다.도매시장의 유통 주체는 지정도매법인과 중매인인데,중매인의 판매행위를 금지시키면 도매법인과 중매인 모두 상품의 소유권이 없어집니다.따라서 「농산물 도매시장」은 「농산물 중개시장」으로 명칭을 바꿔야 할 형편이에요.농민의 경우 오히려 판로가 좁아져 불리해질 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양부회장=정부가 유통개혁의 일환으로 재래시장을 제도권으로 흡수할 계획이라는데,저는 반대합니다.재래시장을 지금처럼 놔두면서 도매시장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정교수=재래시장을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입니다.계도기간을 겨우 6개월로 늘린 것도이해할 수 없습니다.이 짧은 기간에 과연 유통채널의 다양화 등 인적,물적 투자가 뒤따를 수 있을까요.짧은 기간에 단칼에 제도를 바꿔버리면 엄청난 부작용이 생깁니다.이번에 생생하게 겪지 않았습니까.

▲이사무국장=정부가 법논리만 적용해 도매시장을 운영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상장·경매되지 않는 농수산물을 생산자나 도매법인으로부터 넘겨받아 파는 위탁중매인도 양성화해야 합니다.음성적인 거래가 많이 이뤄지는 재래시장도 양성화해야 합니다.

▲정교수=바람직한 농수산물의 유통구조에 관한 말씀들을 해 볼까요.

▲양부회장=정부는 앞으로 6개월 안에 농안법을 전면 재개정하겠다고 합니다.그러나 지난해 농안법이 개정된 뒤 1년이 지나도록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자칫하면 더 잘못된 「기형아」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정부는 농산물 구조개선 사업으로 「도매시장 시설확충」과 「상장 경매제 정착」,「산지유통 합리화」 등 3가지를 공약했습니다.이는 기존의 농안법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결국 구 법의테두리에서 도매시장에 대한 보다 과감한 물적,인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사무국장=핵심은 유통구조 개선인데,앞으로 6개월 동안 너무 지금의 상황에만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10∼15년 뒤에 산지의 여건이 어떻게 바뀌고,생산자들의 역량이 어떻게 달라질 지를 고려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다뤄야 합니다.앞으로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가 더욱 활발해지는 등 생산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따라서 지금의 도매시장 중심의 거래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또 도매시장 관리공사는 시설 관리를,지정 도매법인은 운영을 맡고 있는 지금의 2원적 체계에도 문제가 많습니다.정부와 시장의 상인,생산자단체를 묶어 공공 법인을 설립,이 법인으로하여금 중개와 경매 등의 모든 업무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수수료 현실화를

▲정교수=유통단계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앞으로 기업농의 등장 등 농업구조가 바뀌면 도매시장의 기능은 점차 약화됩니다.따라서급격한 변화는 곤란하고 실효도 없습니다.또 중매인들의 도매행위를 굳이 금지시킬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그보다는 직거래를 늘리는 등 유통채널을 보다 다양화시켜야 합니다.

▲김연구원=앞으로 값 싼 외국의 농수산물이 국내로 들어올 것은 분명합니다.당연히 국내 농수산물 시장의 공급 및 농업구조에 큰 변화가 옵니다.소비자들의 소비행태 역시 과거와 달라집니다.유통구조 개혁의 전제를 바로 여기에 두어야 합니다.소비구조의 변화는 곧 도매구조 나아가 산지구조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이를 충분히 인식,가격안정 및 유통정책은 물론 농업구조 개선정책의 상관관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단편적인 계획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교수=개정된 농안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몇가지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우선 모든 농수축산물이 도매시장에 상장돼 경매되어야 합니다.산지에서는 농수산물의 등급화와 표준화,규격화가 이뤄져야 하고요.그래야 산매상이 물건을 안 보고도 중매인에게 중개를 의뢰할 것 아닙니까.기존 도매시장의 시설이 미흡하고,거기다 공영 도매시장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입니다.중매인이 중개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수수료도 대폭 현실화해야 합니다.<정리=오승호·송태섭기자>
1994-05-1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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