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과학논평)

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과학논평)

정근모 기자 기자
입력 1993-01-06 00:00
수정 1993-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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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제도 유감/과학기술연 양성 역행 개혁을/학생의 재능·창의성 살려줄 방안 강구해야

계유년의 첫 주일,우리는 8년 앞으로 다가선 21세기를 좀더 가까이 느끼게 된다.퇴임하는 미국의 부시대통령과 경제파동에 휩싸여 있는 러시아의 옐친대통령이 역사적인 2단계 전략핵감축협정에 조인함으로써 양국이 갖고 있는 전략핵무기를 10년이내에 3분의2를 폐기한다는 것을 공식화하였다.인류를 핵공포에서 해방시키겠다는 희망의 새시대가 열리는 것이다.우리나라도 새로운 문민정부에 대한 신뢰가 과거 어느때보다도 드높고 21세기 선진한국사회를 향한 획기적인 도약이 시작되리라는 기대감이 많은 국민의 새해 아침을 밝게 해주고 있다.

○개인자질발굴에 무력

이러한 국내외적인 분계점을 직시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관심은 대학입학시험 결과 발표에 초점을 두고 있다.말할 수 없는 기쁨에서 절망적인 패배감까지 극과 극을 달리는 장면들을 보면서 현행 대학입시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점수로 결정되는 합격과 불합격의판정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승부게임이요 안타까운 비교육적 판가름이다.3백40점 만점으로 계산되는 입학시험은 학생의 대학 수학능력을 판정하기에도 극히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갖고 있는 특수자질을 발굴,장려하기에는 너무나 무기력한 교육수단이다.시험문제 작성자들의 문제선별에 따라 시험의 판별력은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채점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서는 2∼3점의 가감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 시험의 한계성이다.정답의 이론도 개재할 수 있으니 입학시험 1점차로서 합격,불합격이 판정되고 이 때문에 재수,삼수하는 학생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고삼가정」이라는 초긴장상태의 가정상황까지 사회적 현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 교육제도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아닐 수 없다.원시적이고 비논리적인 입시제도로 말미암아 파급된 교육적 병폐현상은 너무나 심각하다.전인교육을 지향하여야 할 고등학교교육은 대학입시라는 한 고지를 향한 단순지식교육과 게임(Game)훈련이 되고 말았다.대학입시와 관련이 적은 교육활동은 실질적으로 무시당하고 있으며 엄청난 시간과 재원이 교육적 가치가 희박한 입시준비에 소모되고 있다.그뿐만이 아니라 대학교육마저도 이제는 본말이 전도되어 입시성적이 졸업기준보다 더 중요한 척도가 되고 대학교육내용의 충실성과 수월성은 뒷전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아무리 훌륭한 교수진을 갖추고 있더라도,아무리 혁신적인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은 학생들의 학교선정이나 졸업후의 진로선택에 있어서 주요 결정요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더욱이 각 대학이 갖고 있는 건학이념이나 교육특성은 획일화된 입시성적 점수에 가려져서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다원화된 사회로서 개인개인의 역할의 특성화가 과거 어느때보다도 가속되는 오늘의 과학기술문명사회와는 뚜렷한 역류현상이요 심각한 문제이다.

○문제해결능력 계발을

대학입시제도가 훌륭한 과학기술자를 육성하는데 미치는 악영향은 잘 알려져 있다.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찾는 것으로 한정된 교육으로는 절대로 훌륭한 과학기술자를 기를 수 없다.창조적이요 혁신적인 과학기술자는 문제의 해결 접근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는 창안력을 길러야 하며 더 나아가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문제의 인식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위대한 과학자는 바로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였던 문제를 찾아내고 새로운 문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이로써 획기적인 발견과 발명의 기반을 만들었던 것이다.훌륭한 기술자들은 새로운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새로운 접근방식을 고안해냄으로써 문명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다.따라서 우리 교육이 발전하는 과학기술문명과 보조를 같이 하려면 재능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마음껏 사물을 관찰하게 하고 자유로이 새로운 접근방법을 실험할 수 있는 교육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이미 만들어진 시험문제들의 정답을 찾고 아주 규격화되고 제한된 교과내용의 속달만을 강요하는 입시준비교육과는 정반대의 교육방법인 것이다.하나하나의 학생들을 장기적으로 관찰하고 그들의 재능·재질을 충분히 지도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현실화되지 못하고는 훌륭한 과학기술자를 양성할 수 없다.

○학생선발 대학자율로

세계적인 명문대학교들은 학교마다 독특한 입학전형제도를 따르고 있다.학생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의 소견서를 중시하고 동창생들의 추천서들을 중요한 참고자료로 하는가 하면 책임있는 사회인사들의 추천서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지원생 자신들이 작성한 입학지원동기 및 장래포부에 관한 자술서가 기본자료가 되며 학생의 중·고등학교 성적도 참고가 된다.많은 대학이 지원학생들의 면접을 필수로 하고 있고 입학생 전형 전문가들은 그 학교가 원하는 학생들을 찾아내고자 최선을 다한다.과연 학생이 지원한 대학에서 성공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또는 학생의 전반적인 인품이 미래사회 지도자로서 특출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한번의 시험성적점수에 좌우되지 않고 종합적인 사정방법을 따르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소외층학생들에게도 교육기회도 넓혀주고 대학자체의 교육이념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다.입학생선발권이 대학에 주어져 있기 때문에 교수들은 교권의 하나로서 가르칠 학생들을 스스로 선발할 수 있는 것이다.대학입시제도가 갖고 있는 교육병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루바삐 교권을 대학에 돌려주어 대학 스스로 건학이념에 따라 학생선발을 할 수 있는 자율권을 행사토록 해야 할 것이다.<아주대 석좌교수·고등기술연구원장>
1993-01-0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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