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3인방의 진화
그리스전이 열린 12일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태극전사들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본선 진출 32개 나라 736명의 선수 가운데 ‘최저연봉’의 ‘일병’ 김정우(광주상무). 네 차례에 걸친 평가전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차두리(프라이부르크)와 기성용(셀틱)은 실전인 그리스전에서 ‘스페셜리스트’의 본색을 보여 줬다.●가로채기 귀재…연봉95만원 ‘뼈정우’
이 ‘가난’하고 ‘앙상한’ 선수가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 주역 미드필더 요르고스 카라구니스와 콘스탄티노스 카추라니스(이상 파나시나이코스)를 철저히 봉쇄했다. 이들의 이적료는 122억원. 체격 조건에서 밀리는 김정우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두 선수를 압도했다. 전후반 90분 동안 김정우가 그라운드를 뛰어다닌 거리는 1만 949m.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영리한 가로채기의 귀재인 김정우는 숨겨 놨던 ‘일병본색’, 즉 부지런함까지 보여줬다. 몸값 대비 최대효율을 자랑한 김정우가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리버풀)와 후안 베론(에스투디안테스)에게 어떤 ‘가혹행위’를 선보일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완벽한 체력·광대역 수비수 차두리
사마라스는 차두리의 괴롭힘에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다 결국 후반 14분 교체됐다.
김정우와 함께 10㎞ 넘게 뛰어다니며 카라구니스를 막아냈고, 활동반경이 넓은 테오파니스 게카스(헤르타 베를린)까지 골고루 마크하는 ‘광대역’ 수비폭까지 선보였다. 후반 18분 자로 잰 듯한 크로스를 박주영(AS모나코)의 머리에 정확하게 배달하며 ‘드리블은 잘하는데 킥이 엉망’이라는 세간의 비판까지 완벽히 잠재웠다.
●부활한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기성용
볼을 조심스레 프리킥 지점에 놓고 골문 앞을 살핀 기성용은 단 한번의 스텝을 밟은 뒤 오른발로 강하게 감아 차 올렸다. 제대로 회전을 먹은 자블라니는 그리스 선수들이 머리나 발로 걷어내기 가장 어려운 높이로 날아가다 헤딩하러 들어왔던 이정수(가시마)의 오른발에 제대로 걸렸다. 이른바 ‘택배 프리킥’이라고 불리는 이 프리킥 한 방으로 기성용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부활한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기성용의 킥이 골망을 흔들 시간도 머지않았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2010-06-14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