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도 시련도 이승훈 ‘빙상 의지’ 꺾지 못했다

가난도 시련도 이승훈 ‘빙상 의지’ 꺾지 못했다

입력 2010-02-24 00:00
수정 2010-02-2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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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1만m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을 거머쥔 이승훈 선수의 삶은 400m 빙상을 스물다섯 바퀴 도는 극한의 경기처럼 ‘입에서 단내를 내뿜는’ 끈기의 인생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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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의 어린시절       (서울=연합뉴스)  24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0,0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이승훈의 1995년 7월 리라초등학교대회 당시 역주모습.
이승훈의 어린시절
(서울=연합뉴스) 24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0,0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이승훈의 1995년 7월 리라초등학교대회 당시 역주모습.


초등학교 1학년부터 스케이트를 탔던 이 선수가 심각한 위기를 처음 맞은 것은 초교 4학년 때인 1998년.

국가의 외환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가세가 기울자 부모한테 ‘운동을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하지만, 스케이트 비용을 대기 어렵고 차를 처분해 아이스링크장에 데려주기도 힘든다는 얘기에도 어린 이 선수는 막무가내였다고 했다.

‘혼자 새벽에 일어나 링크장에 가겠다’고 끝까지 버텨, 결국 아버지 수용씨가 “어떻게든 시켜보자”며 두 손을 들었다고 했다.

이후 버스를 타고 하루도 빠짐없이 빙상장을 찾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중고차를 다시 샀다.

어려운 여건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서 서울 신목고와 한국체육대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했지만, 경쟁의 벽은 높기만 했다.

안현수(성남시청)와 이호석(고양시청) 등의 명성에 가려 ‘유망주’ 이상의 찬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작년 4월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쇼트트랙을 포기할 위기에 처했다. 최소한 올림픽 출전 비행기는 탈것으로 믿었기에 충격이 그만큼 더 컸다.

말수가 극도로 줄고 ‘고교 친구들과 멀리 제주도로 여행이나 다녀오고 싶다’는 얘기만 중얼거렸다.

누나 연재씨는 “집안 사정이 여전히 좋지 않아 부모님께도 속시원히 걱정을 털어놓기가 어려웠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이 선수가 고민 끝에 내민 승부수는 종목 전환이었다.

가족들에게 “아무 목표 없이 살 수 없다. 내년 국가대표 선발전까지라도 스피드스케이트를 타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장거리 대표주자인 최근원(의정부시청) 선수처럼 두각은 못 드러내도 ‘최소한 후보선수는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눈물의 선택을 한 것.

이후 스케이트화를 빌려 신고 빙상에 나선 이 선수는 더는 잃을 것이 없다며 투혼을 불태웠다.

온갖 악조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정신을 발휘한 이 선수에게 가난과 눈물로 점철된 인생역정은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싸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6분48초00의 기록으로 최근원 선수도 앞서가며 태극마크를 달았고 밴쿠버 무대에서는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예를 안았던 것.

어머니 윤기수씨는 “당시 종목을 바꾼다는 말에 많이 걱정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겠다는 마음은 참 대견하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24일(한국시각)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종목에서 12분58초55로 완주해 장거리 스케이팅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최대 맞수였던 스벤 크라머(네덜란드)가 4초 앞선 기록을 냈지만, 코너 침범으로 실격했다.

연합뉴스

☞밴쿠버 동계올림픽 사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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