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이 즐기는 8090세대 세계무대 ‘우뚝’

겁없이 즐기는 8090세대 세계무대 ‘우뚝’

입력 2010-02-24 00:00
수정 2010-02-24 09:3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두려움은 없었다.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은 아시아 선수가 메달을 딴 적이 없었지만,빙판 위의 이승훈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태범과 이상화,이승훈,이정수,김연아.이들을 키워낸 것 중 8할이 두려움을 모르는 자신감이었다.

 24일 빙속 100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은 코칭스태프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대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양손의 검지를 펴 먼 곳을 가리키는 ‘손가락 세리머니’를 펼쳤다.

 빙속 500m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모태범(21) 선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장면이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모태범은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에 겨워 트랙을 도는 대신 온몸에 태극기를 휘감고 막춤을 췄다.

 금메달을 딸 때면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에 익숙해진 기성세대에는 어떻게 보면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이정수,이상화 선수는 모두 1989년생이며 이승훈 선수는 한 살 많은 1988년생이다.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는 ‘피겨여왕’ 김연아 역시 1990년생에 불과하다.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이들에게서 선배 국가대표 선수가 품었던 정도의 애국심과 헝그리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이고 철없어 보이는 어린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선배의 성과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하는 운동의 효율성’과 개성적·양성적인 어린 선수들의 특성,허물없는 선·후배관계 등이 어우러져 어린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떼밀려 하는 운동’ 대신 ‘스스로 하는 운동’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라면 먹고 뛰어 금메달을 땄다”는 임춘애 선수처럼 과거 운동선수들은 가난극복이나 효도 등 외부환경에서 운동의 동기를 찾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운동을 시작한 선수들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안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운동에만 열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스포츠 심리학회 김병준(44·인하대 체육교육학과 교수) 부회장은 “외부환경에 떼밀려 운동을 한 선배들과 달리 요즘 선수들은 자신의 성취와 발전을 위해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우승의 순간에 한 맺힌 울음을 터뜨리는 선수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이유도 운동의 동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부회장은 “가난을 극복하겠다며 이를 악물고 운동에 매달리는 것 못지않게 스스로 성취를 위해 하는 운동도 고된 훈련을 견디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양성적·개성적인 선수들

 모태범 선수는 왼쪽 귀에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있으며,남성 못지않은 허벅지가 화제가 돼 ‘꿀벅지’라는 별명이 붙은 이상화 선수는 보이시한(사내아이 같은) 매력을 풍긴다.

 쇼트트랙의 이정수 선수 역시 매우 꼼꼼한 성격이다.이정수 선수의 아버지 이도원(58)씨는 “물건을 살 때면 세심하게 비교한 끝에 구입하며 여성 못지않게 화장품이나 미용실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어린 선수들이라 개성이 강한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최고 수준에 오른 어린 선수들은 결단력과 지구력,근력 등 남성적 특성과 세심함,안정적 경기운영 등 여성적 특성을 모두 갖춘 경우가 많다.

 모태범 선수의 귀걸이 패션이나 이상화 선수의 보이시한 매력도 양성의 장점을 겸비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회장은 “엘리트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 바로 양성의 장점을 모두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물없는 선·후배 관계

 전문가들은 막내와 맏형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개선된 선·후배 관계도 개성 강한 어린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분석한다.

 나가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트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윤의준(51) 대한빙상경기연맹 기술강화위원은 “예전에는 후배가 선배의 빨래도 했지만 요즘은 선·후배 관계가 정말 좋다.대표팀 맏형인 규혁이가 33살이고 막내는 18살이지만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금메달을 딴 뒤 춤을 추고,시합 전 MP3 플레이어를 귀에 꼽고 여유를 부리는 후배는 과거의 엄격한 선·후배 관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선배도 더이상 권위만 앞세우지 않는다.김윤만에서 제갈성렬,이규혁,이강석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그 자체가 한국 빙속의 발전 과정이자 후배의 롤모델로 자리잡았다.

 모태범,이상화는 맏형 이규혁을 롤모델로 삼고 운동한 이른바 ‘이규혁 키즈(Kids)’들이다.

 윤 위원은 “자유로운 선후배 관계와 어린 선수들의 개방적인 성격이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선·후배 관계가 두터웠기 때문에 선배의 기술이 후배에게 안정적으로 전수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밴쿠버 동계올림픽 사진 보러가기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