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도 ‘핫식스’… 눈물로 품은 ‘메이저 퀸’

정신력도 ‘핫식스’… 눈물로 품은 ‘메이저 퀸’

한재희 기자
입력 2019-06-03 22:38
수정 2019-06-04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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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US여자오픈서 LPGA 첫 승

6언더파로 역전승… 9번째 도전 끝 정상
데뷔 첫 해 우승… 한국 선수로는 10번째
100만 달러 받고 상금 랭킹 1위에 올라


장애 아버지에 가정 형편마저 어려워
생계 때문에 골프채 잡은 사연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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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왼쪽)이 3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컨트리클럽 오브 찰스턴에서 끝난 제74회 US여자오픈에서 역전 우승으로 데뷔 9개 대회 만에 투어 정상에 오른 뒤 선배 유소연을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찰스턴 AP 연합뉴스
이정은(왼쪽)이 3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컨트리클럽 오브 찰스턴에서 끝난 제74회 US여자오픈에서 역전 우승으로 데뷔 9개 대회 만에 투어 정상에 오른 뒤 선배 유소연을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찰스턴 AP 연합뉴스
US여자오픈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핫식스’ 이정은(23)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시상식 도중에는 곁에 있던 통역까지 함께 눈시울을 붉혔고, 갤러리는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이정은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일궈내기까지 남들보다 몇 배의 눈물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지만 흥미를 잃고 2년 만에 그만뒀던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레슨 코치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이정은이 네 살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버지 이정호(55)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고, 장애인용 승합차를 직접 운전해 딸을 프로골퍼로 키웠다.

시작은 늦었지만 이정은은 201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2017년에는 KLPGA 시상식에서 6개의 타이틀을 휩쓸었다. 2018년에는 미국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KLPGA 상금과 평균타수 등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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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연이 뿌린 샴페인 세례를 받은 뒤 웃고 있는 이정은의 모습. 찰스턴 AP 연합뉴스
유소연이 뿌린 샴페인 세례를 받은 뒤 웃고 있는 이정은의 모습.
찰스턴 AP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LPGA 투어 퀄리파잉 시리즈를 1위로 통과해 데뷔한 올해 그의 첫승 도전은 쉽지 않았다. 지난 8차례 치른 대회에서 늘 ‘톱10’ 언저리 성적을 내면서도 정작 우승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9번째 도전 무대인 US여자오픈 코스는 더했다.

컨트리클럽 오브 찰스턴의 11번홀 그린은 섬처럼 솟아 있고, 양옆에 깊고 넓은 벙커가 있어 매우 까다로웠다. US여자오픈 우승 경험이 있는 지은희(33)와 박인비(31)마저도 각각 1라운드와 3라운드 더블보기로 진땀을 흘렸다. 대회 초반 악천후도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정은은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골프를 해나갔다. 1~5위까지의 선수들이 모두 오버파를 적어내며 나가 떨어지는 동안 공동 6위로 4라운드를 출발한 이정은은 집중력을 발휘해 1언더파로 라운드를 마쳤다.

첫 홀부터 보기가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1번홀 보기를 했을 때 마무리가 좋았던 기억이 많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2위 그룹에 1타차 앞선 채 경기를 먼저 마친 뒤에도 나홀로 퍼팅 연습을 하며 혹시 있을지 모를 연장전에 대비했다.

이정은은 결국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를 적어내며 자신의 첫 우승을 역전 메이저 트로피로 장식했다. 두 차례 우승한 박인비를 포함해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9번째(횟수로는 10번째) 한국인 챔피언이다. 다른 4개 메이저대회보다 우승 횟수가 월등히 많다. 최근 10년간 한국 국적이 아닌 우승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네 명뿐이다. US여자오픈이 매년 어려운 코스로 변신하지만 강한 정신력과 단단한 기본기로 무장한 한국 선수들에게는 되레 더 없는 ‘텃발’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은은 일반 대회의 두 배인 300점의 신인왕 포인트까지 받아 752점으로 이 부문 선두를 꿰차며 5년 연속 한국 선수의 LPGA 신인왕 전망을 밝혔다. 우승 상금도 이번 대회부터 오른 역대 최고액인 100만 달러(약 12억원)를 챙겨 시즌 1위(135만 3836달러)로 올라섰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2019-06-0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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