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 수확 한국 탁구, 앞날은 ‘가시밭길’

銀 수확 한국 탁구, 앞날은 ‘가시밭길’

입력 2012-08-09 00:00
수정 2012-08-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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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감독제 도입에도 중국과 격차 확인..차세대 성장이 관건

“결승 전날인 저녁 7시부터 오늘 새벽 1시반까지 한국팀을 분석했습니다.”

세계 최강 중국 탁구 대표팀을 이끄는 류궈량 감독은 8일(현지시간) 2012 런던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우승을 이끈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 각종 국제대회에서 10여년 이상 숱하게 마주쳐 전력을 파악하고도 남았을 유승민과 주세혁, 오상은 등 한국 선수들을 상대로도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대비했다는 얘기다.

최고의 실력을 보유하고도 ‘완벽 그 이상’을 쫓는 중국 탁구의 저력을 보여주는 이 말에 각국 취재진들은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 한국 기자는 “실력도 한 차원 위인데다 저렇게 악착같이 준비하는 중국을 어떻게 이겨”라고도 했다.

인터넷 신조어인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준말.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상대를 뜻함)’에 딱 들어맞는 존재가 바로 중국 탁구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 중국에 한국 탁구가 도전했다. 그리고 졌다.

◇남녀 희비교차’2인자’ 자리도 위협 =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남녀 모두 똑같이 중국을 넘지 못했지만 양상과 결과는 달랐다.

개인전은 애초 비중 있는 목표가 아니었지만 주세혁(삼성생명)·오상은(KDB대우증권), 김경아(대한항공)·박미영(삼성생명)이 모두 첫 판 32강이나 8강에서 탈락할 정도로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이후 한국은 4년 전 베이징 대회 때 남녀 동반 단체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온 힘을 단체전에 집중했다.

그 결과 2번 시드로 결승까지 중국을 피할 수 있었던 남자팀은 북한-포르투갈-홍콩을 차례로 누르고 결승에 올라 한단계 위 은메달 시상대에 올랐다.

반면 4번 시드를 받은 여자팀은 중국과 준결승에서 마주쳐 패했고 3-4위전에서는 ‘리틀 차이나’ 싱가포르에 져 역대 올림픽 최초 노메달이라는 수모를 안았다.

한국이 2000 시드니올림픽 때 여자복식 동메달 1개 이후로 가장 적은 메달에 만족한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2회 연속 남녀 단식과 단체전 4종목을 싹쓸이하며 세계 최강의 위용을 과시했다.

중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진 반면 수년 전까지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왔던 다른 경쟁자들은 급격히 성장했다.

특히 일본 여자는 후쿠하라 아이, 이시카와 가쓰미 등 20세 안팎의 어린 선수들을 앞세워 싱가포르를 꺾고 결승에 진출, 중국에 이어 은메달을 따는 저력을 발휘했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을 위협하는 대항마로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2인자’라는 말도 무색해질 정도가 된 것이다.

◇전임감독제 ‘유명무실’ = 대한탁구협회가 최초로 대표팀 전임 감독을 두고 야심차게 런던올림픽을 준비에 나섰던 점을 고려하면 이런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다.

협회는 지난해 초 유남규·강희찬 감독을 각각 남녀 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임명하고 감독 재량을 최대한 보장하는 등 힘을 싣겠다고 했다.

감독이 소속팀이 있는 상태에서는 대표팀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선수도 이전처럼 선발전을 치르지 않고 세계랭킹과 실전 감각, 국제대회 경험 등을 고려해 뽑았다.

하지만 정작 런던올림픽에 오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협회가 전임 감독제를 시행하면서 내세웠던 취지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이미 선발한 선수를 두고 교체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선수 부상에 대비한 예비선수(P카드)를 뽑을 때에는 감독이 택한 선수가 강화위원회를 거치면서 바뀌기도 했다.

런던올림픽을 불과 두어 달 앞두고는 강문수 삼성생명 감독과 현정화 협회 전무가 각각 남녀 대표팀 ‘총감독’이라는 직함을 달았다.

협회는 총감독이 일종의 고문 역할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일종의 ‘옥상옥’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여자팀의 경우 강희찬 감독이 실전에서 한 번도 벤치에 앉지 않고 대신 현정화 전무가 나서는 등 전임감독제란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감독이 선수 선발과 운용 등 전권을 행사하는 대신 성적에도 책임을 지는 중국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쉽지 않은 세대교체 = 이런 가운데에도 한국은 남자 단체전 은메달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2년 뒤 인천아시안게임과, 4년 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현재 중국의 주축인 장지커와 마룽, 딩닝, 리샤오샤 등이 이미 20대 초중반에 최정상급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데에 비해 한국은 오상은, 주세혁, 유승민, 김경아의 뒤를 이을 뚜렷한 에이스가 없기 때문이다.

남자 선수로는 김민석(20·KGC인삼공사), 이상수(22), 서현덕(21·이상 삼성생명), 정영식(20·대우증권)이, 여자선수 중에서는 양하은(18·대한항공)과 귀화선수 전지희(20·포스코파워) 등이 기대주로 꼽힌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이들 젊은 선수들이 중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국내 지도자들의 평가다.

국제무대에서도 이상수가 올해 코리아오픈에서 마룽을, 정영식은 일본오픈에서 티모 볼을 꺾었고 서현덕은 지난해 중국오픈에서 장지커를 이기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선배들을 실력으로 확실히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세대교체가 절실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할 일이지 제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베테랑들이 자리를 거저 비워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유망주를 정상급 선수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도자들은 지적한다.

일본의 경우 10년 전부터 유망주를 발굴해 중국 리그를 경험하게 하고 탁구 전용 체육관을 지어 훈련하게 하는 등 꾸준히 투자를 해왔고 이는 런던올림픽에서 성과로 이어졌다.

김택수 KDB대우증권 감독은 “나이 많은 선수들이 현대 탁구 기술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세대교체도 경쟁과 자극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유망주들이 실력으로 치고 올라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또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려면 투자는 필수다. 특히 중국 탁구를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준비해야 다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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