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KOREA’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

별이 된 ‘KOREA’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

강국진 기자
강국진 기자
입력 2016-02-21 23:08
수정 2016-02-2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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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 별세

광복 후 첫 올림픽 역도 동메달

14년 최장수 태릉선수촌장 지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이 지난 2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7세.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이며 장지는 경기 안성시 천주교 추모공원이다. 발인은 23일 오전 8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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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별세한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이 우리나라가 태극기를 달고 처음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남자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낼 당시 모습. 서울신문 DB
지난 20일 별세한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이 우리나라가 태극기를 달고 처음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남자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낼 당시 모습.
서울신문 DB
김 고문은 대한민국이 ‘KOREA’란 이름으로 처음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남자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낸 데 이어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올림픽 역사에서 첫 메달이었고, 첫 두 대회 연속 메달이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고문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한국에 역도를 보급한 서상천이 쓴 ‘현대 체력증진법’을 읽고 역도를 동경해 중앙체육연구소에 발을 들이면서 역도와 인연을 맺게 됐다. 역도 입문 2년 만인 1935년 제6회 전조선 역기대회 중체급에서 정상에 오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출전을 위한 조선 예선에서 합계 317.5㎏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조선 대표로 전일본 역기선수권대회에 나서 다시 317.5㎏을 들어 챔피언이 됐다. 하지만 일본역도연맹은 “김성집이 만 18세가 되지 않았다”며 올림픽 출전을 허가하지 않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광복 이후 김 고문은 런던올림픽 역도 대표팀 선발전에서 미들급 합계 385㎏으로 우승했다. 서울을 떠나 런던까지 20일이 걸리는 고된 여정 끝에 올림픽에 나선 김 고문은 합계 380㎏을 기록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헬싱키올림픽에서는 감독 겸 선수로 75㎏급 경기에 나서 합계 382.5㎏을 들었다.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5위를 기록한 뒤에는 체육행정가로서 일했다. 특히 고인은 역대 최장수인 13년 7개월 동안 태릉선수촌장을 지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2016-02-2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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