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개혁으로 마음 얻고 여론전으로 압박

레슬링, 개혁으로 마음 얻고 여론전으로 압박

입력 2013-05-30 00:00
수정 2013-05-30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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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이 3개월 만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들로부터 ‘오케이’ 판정을 받아낸 원동력은 내부적으로는 뼈를 깎는 개혁에 나서는 한편 외부적인 여론의 힘을 얻어 압박을 가한 ‘양면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2월 레슬링을 하계올림픽 핵심종목에서 퇴출시키는 충격적인 선택을 한 IOC 집행위원들은 불리하게 돌아가는 여론의 부담 속에서 레슬링의 변화 노력을 인정하는 제스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퇴출 소식을 접하자마자 나흘 만에 라파엘 마르티네티 전 회장을 자리에서 내려앉혔다.

마르티네티 회장은 2002년부터 장기 집권하면서 안으로는 막강한 권한을 마음껏 휘둘렀고, 밖으로는 개혁을 요구하는 IOC의 목소리를 묵살해 온 장본인으로 꼽혀 왔다.

이렇게 강력한 개혁 의지를 드러낸 FILA는 이후 IOC가 원하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변화에 착수했다.

3개월간의 논의 끝에 이달 19일 만들어낸 개혁안은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칭찬을 이끌어냈다.

먼저 여성 부회장 자리를 신설해 ‘양성 평등’을 구현하라던 IOC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일반적인 팬들이 보고는 경기 결과를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비판에 대응해 경기 방식도 수정했다.

세트제로 진행되던 경기를 3분 2회전의 총점제로 바꿔 득점 상황만 보고도 직관적으로 결과를 알 수 있도록 했다.

패시브 규칙에도 변화를 줘 한 번만 주의를 받고 나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유도했다.

이 밖에도 여자 자유형의 체급을 늘리거나 원피스형 유니폼에 변화를 주는 등 종목의 틀을 흔들 수 있는 변화도 논의 중이다.

물론, 치열한 스포츠외교의 현장인 IOC의 결정은 이런 변화 노력만으로 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개혁 작업이 IOC의 입장 변화에 ‘명분’을 줬다면 실질적으로 이를 이끈 것은 레슬링인들을 포함한 각국의 압박이었다.

이미 레슬링 퇴출 결정이 난 직후부터 전 세계 여론은 ‘IOC가 상업성에 집착해 상징성까지 포기하려 하고 있다’는 쪽이 주를 이뤘다.

여기에 미국, 러시아, 이란, 일본 등 레슬링 강국의 여론몰이가 보태졌다.

미국의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IOC의 의사결정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내놓았고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 고위층들이 ‘레슬링 살리기’에 힘을 보태겠다며 나섰다.

2020년 올림픽 유치를 원하는 도쿄 도지사가 집행위의 결정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란의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국제무대의 ‘앙숙’ 미국 대표팀 관계자들과 악수하고 축하의 말을 나누는 이례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이란 레슬러들은 최근 미국 도심에서 연달아 이벤트 대회에 출전, 미국·러시아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며 국제정치에서의 역학관계와 무관하게 레슬링 회생을 위해 힘을 모았다는 연대감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들이 메달 반납 운동을 벌이거나 단식 항의에 돌입한 것도 IOC를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눈에 보이는 압박뿐 아니라 물밑에서 치열한 로비가 벌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IOC 집행위원들은 세 종목의 후보를 추리는 방식으로 3개월 만에 자신들의 선택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뼈를 깎는 개혁과 로비·여론전을 병행한 레슬링의 노력은 앞으로도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스포츠 외교의 장에서 한국 체육계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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