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프로배구 ‘연습생 신화’ 1호 꿈꾼다

男프로배구 ‘연습생 신화’ 1호 꿈꾼다

입력 2010-10-08 00:00
수정 2010-10-0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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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손해보험 수련선수 세터 이승룡

애초에 1, 2라운드는 기대도 안 했다. 기대를 걸었던 3라운드 지명이 시작됐다. 1순위의 KEPCO45가 지명을 포기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2순위 우리캐피탈부터 6순위 삼성화재까지 3라운드 지명 선수의 이름을 차례대로 불렀다. 뽑히지 않았다. 마지막 4라운드. 두 눈을 감았다. 배구와 함께한 14년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제발….’ 1순위 삼성화재는 지명을 포기했다.

현대캐피탈, 대한항공, LIG손해보험, 우리캐피탈도, 그리고 마지막 KEPCO45마저 지명을 포기했다. 모든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 긴 한숨이 나왔다. ‘그래, 부모님 오시지 말라고 하길 잘했어.’, ‘이제 뭐하고 살까. 군대를 다녀올까. 실업으로 갈 수 있을까.’, ‘배구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등 온갖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각 팀이 수련선수를 부르기 시작했다. 6개 팀이 5명을 뽑은 수련선수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2010~2011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는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다. 장내는 어수선했고, 모두 자리를 뜨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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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룡 선수
이승룡 선수


●‘주전자’로 불리는 수련선수

“이승룡” 별안간 LIG손해보험이 두 번째 수련선수를 불렀다. 각 구단의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갔다. 꽃다발도 축하도 없었다. 제일 뒤 구석자리로 가서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두리번거렸다. 막차 중의 막차다. 그 흔한 ‘희망’ 한 점 찾기 힘든 그저 막막한 출발. 1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에게는 2010년 9월28일에 일어난 상황이 생생하다. 홍익대 세터 이승룡(22)은 직업 배구선수로서의 인생을 그렇게 시작했다.

각 라운드 지명 선수들은 최소 3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1~6년 계약을 맺지만 이승룡 같은 수련선수는 연봉 1800만원에 1년 단기계약이다. 주전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거나 은퇴할 경우 대체 선수로 출전한다. 사실상 경기를 못 뛴다는 얘기다. 박봉에다 가능성 ‘0’의 희미한 희망 한 점을 얹은 1년짜리 계약직인 셈이다.

수련선수들은 주로 주전들의 연습 상대로 뛴다. 주전들 뒤치다꺼리 하다 사라지는 이들을 배구판에서는 ‘주전자’라고 부른다. 주전자 가운데 설움을 딛고 주전을 꿰차 ‘연습생 신화’를 쓴 것은 여자 배구 흥국생명의 전민정(25)이 유일하다. 프로배구에는 2군 경기도 없고, 출전 선수도 6명밖에 안 돼 그만큼 기회가 없다.

●“막막하지만 배구밖에 없어요”

이승룡은 “3라운드 정도 예상했는데, 막막하네요.”라고 말한 뒤 고개를 숙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배들 응원하러 갔다가 키가 크다는 이유로 배구를 시작했다. 중·고교 시절 갈등도 많았다. 고등학교 때 186㎝였던 키는 더 크지 않았고, 실력도 늘지 않았다. 공격수에서 세터로 전향했다. 고민 끝에 운동만 하는 1부 대학이 아니라 운동과 공부를 함께 하는 2부 대학에 가려 했다. 하지만 등록금 마련도 힘든 형편과 주위 권유로 1부인 홍익대를 선택했다. 잘하는 팀이 아닌지라 한 번도 우승을 못 해 봤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속에서 배구 인생은 아쉬운 기억밖에 없다. 이승룡은 “그래도 할 줄 아는 게 배구밖에 없잖아요.”라면서도 “한 번이라도 기회가 올지 모르겠네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 번이라도 기회가 올지 모르겠네요”

배구단 관계자는 “팀의 주전 세터인 황동일, 하성래가 군대를 가야 하기 때문에 이승룡에게 기회는 있다.”면서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실력을 끌어올린다면 주전으로 못 뛸 것도 없다.”고 했다.배구가 아닌 다른 것은 할 줄 모르고, 할 생각도 없는 이승룡은 이내 입을 악물었다. “위로해 주실 필요 없어요.”라며 돌아서는 뒷모습이 마냥 서글프지만은 않았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2010-10-0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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