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보다 낮은 ‘정답률 18%’… 욕먹는 수능 문제, 왜 나올까

찍기보다 낮은 ‘정답률 18%’… 욕먹는 수능 문제, 왜 나올까

박재홍 기자
박재홍 기자
입력 2018-11-19 22:16
수정 2018-11-2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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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난도’ 국어 31번 이의제기만 30여건
출제때 최저 목표 정답률 20%도 못 미쳐
출제 참여 교사 “1~9등급 줄 세우기 위해
최대한 어려운 문제 낼 수밖에 없어”


전문가 “대안은 절대평가·서술형 문제
내신 불신·공정성 논란에 도입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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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영역 31번은 정말 실패한 문항이었을까.’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국어영역 31번의 난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1교시 국어영역이 너무 어려워 ‘불수능’(난도가 높은 수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수험생과 현장 교사들이 31번을 가장 까다로웠던 문항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과학 문제로 착각할 법한 지문과 보기를 짧은 시간 내 읽고 풀어야 했기에 수험생 사이에서는 비난에 가까운 불만이 터져나왔다.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는 이 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이 30건 넘게 올라왔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비판성 청원글이 게재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31번은 난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입시업체인 이투스·메가스터디·EBS 등이 수험생의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이 문제의 정답률은 18~19%(19일 오후 4시 기준)였다. 10명 중 2명도 못 맞혔다는 얘기다. 수능 전 과목에 출제된 객관식 가운데 가장 낮다. 수능 출제 과정에 밝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문제 출제 때 목표 정답률을 20% 밑으로 잡는 일은 없다. 5지선다이기 때문에 문제가 너무 어려워 수험생 전부가 보기 중 하나를 임의로 찍는다고 가정해도 정답을 맞힐 확률이 20%는 되기 때문이다. 결국 31번의 정답을 맞힌 수험생 중에도 문제를 확실히 이해하고 푼 이는 극히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둘러싼 논란은 올해 처음 생긴 일이 아니다. 지난해 국어영역에는 ▲환율의 오버슈팅 현상(단기 급등락)과 정부 정책 수단을 소재로 한 문항 ▲디지털 통신 시스템 관련 지문을 읽고 푸는 문항 등이 많은 수험생을 울렸다. 오버슈팅 관련 문제를 두고는 “금융전문가도 틀렸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상대평가 방식인 현행 수능에서는 매년 난이도 조절 실패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준 점수 이상을 얻은 수험생에게는 모두 동일 등급을 부여(예컨대 90점 이상이면 1등급)하는 절대평가 방식과 달리 상대평가에서는 1점 단위로 학생들을 변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능 문제 중 70%는 EBS 문제집에서 연계 출제하도록 방침이 서 있는 데다 이른바 ‘1타 강사’(인기 높은 사교육 강사)의 인터넷 강의 등을 통해 수능 맞춤형 사교육이 보편화하면서 수험생의 평균적 문제 풀이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도 출제위원들에게는 골칫거리다. 웬만큼 어렵게 내서는 학생들 실력을 변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한 교사는 “평가원에서 문제의 난이도를 구체적으로 요구하진 않지만 ‘1등급과 9등급 사이 공백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면서 “모든 수험생의 성적을 완벽히 줄 세우도록 하라는 얘긴데 결국 최대한 어려운 문제를 내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대원 경기 위례한빛고 교사는 “현재 수능 시스템에서는 매년 31번 같은 문제 또는 더 어렵게 꼬여 있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전문가들은 “교육 과정과 동떨어진 킬러 문제 출제를 막으려면 현행 수능의 형태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절대평가 과목을 늘리거나 논·서술형 문제 등을 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숙명여고 사태’ 등을 겪으며 현행 내신 위주 입시 체제에 대한 불신이 더욱 강해진 많은 학부모들이 수능 전형 확대를 요구하고 있어 절대평가 과목을 크게 늘리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8월 진행된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 공론화 과정에서도 절대평가 전환의 당위성은 지지 받았지만 아직 때가 이르다고 판단해 중장기 과제로 남겨뒀다. 또 논·서술형 문제 출제도 채점 공정성 확보라는 선행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2018-11-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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