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은 과학이자 산업… 우리는 여전히 ‘버네이스 시대’에 살고 있다
189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스’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 일라이는 부유한 곡물상이었고 어머니 안나는 ‘꿈의 해석’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여동생이었다. 이듬해 버네이스는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고 코넬대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버네이스가 처음으로 가진 직업은 곡물 유통업이었지만 곧 친구의 의학 잡지사로 자리를 옮겨 기자로 일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연방공보위원회에서 독일에 맞선 전쟁의 당위성을 세계에 알리는 선전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전후 본격적으로 홍보업(PR)에 뛰어든 버네이스는 광고판과 신문광고만이 전부이던 홍보시장에 외삼촌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접목했다. 그로 인해 PR은 과학이자 산업이 됐고 버네이스는 ‘PR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저서 ‘프로파간다’는 오늘날까지 신문방송학과 광고홍보학을 배우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에드워드 버네이스
예를 들어 전체 환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더라도 20대 초반의 여성에게서 다른 계층보다 조금이라도 효과가 높게 나타난다면 ‘20대 초반 여성을 위한 약품’이 되는 식이다. 또 제약회사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생략하고 위험한 부작용은 축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브리티시 메디컬저널 측은 “사후 마케팅 연구들은 FDA 승인을 받기 위한 절차처럼 면밀한 검토와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조작과 오용이 일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이 같은 제약회사의 마케팅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과학’보다는 ‘조작’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제약회사들은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네이처의 분석에 따르면 하나의 약을 개발하기 위해 제약사들이 투자하는 돈은 최소한 수백만 달러가 넘는다. 심지어 시장에 출시되는 약보다 중간에 폐기되는 약이 더 많다. 그러나 약에 대한 특허권은 10년 안팎에 불과하고 이 시간 동안 제약회사들은 투자금을 최대한 많이 회수해야 한다. 의사들을 동원한 홍보로도 충분치 않다고 여긴 회사들은 이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버네이스의 이론을 실험하고 있다. 대통령 자문까지 맡고 있던 버네이스는 1930년대 이후 여성의 흡연권 보장을 외치는 여성 인권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의 거리행진을 부추겼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이 앞서가는 여성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는 지지부진한 담배 판매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여성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버네이스의 ‘담배회사 컨설팅’의 일환이었다. 오늘날의 제약회사들은 보다 확실하고 치밀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장기적인 처방을 받는 사람들을 설득해 ‘약’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캠페인 전환’으로 불리는 이 마케팅을 권하는 것 역시 의사들이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평생 동안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보다 과감한 마케팅이 가능하다. ‘A1CHIEVE’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인슐린 연구에는 21개국에서 6만 7000명의 임상실험자들이 등록했고, 비용은 모두 노보노르딕에서 부담했다. 임상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형으로 가공된 인슐린 유사체에 깊은 신뢰를 갖게 됐고 약이 출시되면 평생 고객이 될 것이다. 새로운 환자를 찾아 기존의 약과 어떻게 다른지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인 셈이다. 그러나 의학자들은 이를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에드윈 게일 영국 브리스톨대 교수는 “임상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저혈당이나 기존 약품보다 훨씬 더 많은 투약량 등 약리학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약이 효과가 있다는 의사와 제약사의 말만 믿게 된다.”면서 “이것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A1CHIEVE’ 실험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에서 훨씬 더 폭넓게 진행됐다. 네이처는 이를 ‘캠페인 전환’ 마케팅에 대한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보노르딕은 네이처에 “우리의 활동은 오피니언 리더들을 상대로 한 의학적 효과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일 뿐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뇨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과 과학자, 의사들은 이들이 버네이스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2012-06-19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