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글리시’ 걱정은 기우… 문화적 공감대 넓혀

‘인글리시’ 걱정은 기우… 문화적 공감대 넓혀

입력 2010-11-09 00:00
수정 201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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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인도인 영어보조교사 수업 들어보니

“처음에는 미국·캐나다나 영국·호주에서 선생님이 올 줄 알았어요.” 인도인인 토마스 애비가 원어민 보조교사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전북 완주고 교사와 학생들은 지난 3일 학교를 찾은 기자에게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학교 현장에 배치되는 원어민 보조교사가 늘고 있지만, 인도 등 제3세계 국가 출신 교사는 드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인도 출신 교사 채용이 법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했다. 법무부가 인도와 영어 보조교사에 관한 양허 내용이 포함된 통상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아일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등 7개국에서만 영어 보조교사를 채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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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고 원어민 보조교사인 인도인 토마스 애비가 지난 3일 2학년 8반 학생들에게 뇌의 인지 기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전북 완주고 원어민 보조교사인 인도인 토마스 애비가 지난 3일 2학년 8반 학생들에게 뇌의 인지 기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인도 정부와 맺은 협정 덕분에 올해 처음으로 학교에 투입된 인도 교사는 3명. 농촌지역인 전라북도에 2명, 경상북도에 1명이 배정됐다. 애비는 지난 6월 3명 가운데 유일하게 일선 학교 교사로 배치됐다. 나머지 2명은 영어 체험센터와 경북 교육연구원에 배치될 예정이다. 애비를 제외한 2명이 바로 교육 현장에 투입되지 않은 것은 발음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특유의 액센트가 강한 인도식 영어인 ‘인글리시’에 학생과 학부모가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美 출신보다 월급 30만~90만원 적어

애비의 경우에는 이런 우려가 덜했다. 생물학·신학·철학 등 3개 학사를 가진 애비는 국내에서 한일대 신학 석사와 원광대 철학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에서 산 게 10년 가까이 되어 한국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영어 발음 역시 한국인이 알아듣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유창했다. 애비를 선발한 전북도교육청 교육진흥과 이재청 연구사는 8일 “발음 문제가 해결됐을 때 인도 출신 교사를 선발하는 게 교육적으로 더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사는 ▲동양인으로서 문화가 비슷하다는 점 ▲한국 학교의 시스템을 존중하고 협조적이라는 점 ▲고학력자이거나 자국 교원자격증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성교육에도 효과적이라는 점 등을 인도 출신 교사의 장점으로 꼽았다. 상대적으로 미국·호주 등지에서 온 교사들에 비해 고학력자임에도 불구, 월급을 30만~90만원 가까이 적게 책정한다는 점도 한국 입장에서는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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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 영어 보조교사 토마스 애비(오른쪽)가 지난 3일 전북 완주고 학생에게 영어 작문 지도를 하고 있다.
인도인 영어 보조교사 토마스 애비(오른쪽)가 지난 3일 전북 완주고 학생에게 영어 작문 지도를 하고 있다.


완주고 양인선 영어교사는 ‘인글리시’를 배울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는 “학생들이 외국에 나간다면 뉴스에 나오는 정확한 발음뿐 아니라 다양한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접하게 된다.”면서 “싱가포르 사람이 쓰는 영어, 핀란드 사람이 쓰는 영어, 홍콩 사람이 쓰는 영어가 모두 다를 텐데 발음에만 신경 쓰다가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다면 좋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캐나다인 보조교사, 한국 교포 보조교사와 함께 일해 본 양 교사는 수업 준비에 열의를 보이고 학생들과 진심으로 교류하려는 애비의 태도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학생들은 어떨까. 애비의 발음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학교 2학년인 이슬비양은 “원어민 교사에게는 영어뿐 아니라 그들의 문화나 외국인을 접하는 경험을 익히면서 배우는 게 많은데, 인도 교사를 만나면서 우리가 미국보다 인도 등 주변국가 문화를 더 모른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양은 애비가 인도 전통방식으로 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다음날 손에 주홍색 염료를 묻힌 채 나타났던 경험을 떠올리며 “인도 교사 때문에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평가했다.

애비 입장에서도 원어민 교사는 좋은 경험이라고 한다. 기자를 만난 애비는 자신이 예전에 쓰던 명함이라면서 대전에 위치한 학교의 조교 명함을 건넸다.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한국에서 보람있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인도에서 한국에 영어 원어민 교사를 지원할 교사가 많다고 애비는 덧붙였다. 학교 현장에서 질 높은 원어민 교사를 확보하려는 우리 측의 수요와 인도 등 제3세계 영어권 국가의 인력 공급이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친근하게 영어 익힐 수 있도록 지도”

인도 교사가 현장에 투입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교육적인 효과도 나타났다. 예컨대 인도에서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을 금기시한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Don’t dump here).’라고 하는 대신 ‘깨끗이 치우세요(Clean up the trash).’라고 하는 식이다. 비슷한 이유로 미국 등지에서 흔히 쓰는 욕설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애비는 “한국 학생들은 문법에 강하지만,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말하는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다.”면서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친근하게 영어를 익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완주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2010-11-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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