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수습·운구’ 이상재 장의사가 목격한 코로나 2년
자택서 숨지면 30분 안에 수습손도 못 잡아보고 눈물의 이별
요양병원 노인 “살려달라” 호소
남편 떠나고 보름 뒤 아내 숨져
화장장 오는 신생아 너무 참담
죄책감 클 유족들 껴안아 줘야
25년차 장의사(장례지도사)인 이상재씨만큼 죽음 이후를 지켜보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 국내에 몇이나 더 있을까. 그런 그조차도 “코로나 시대의 죽음은 애도받지 못했기에 특별히 더 가혹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이달 초부터 자신의 사무실 등에서 서울신문 기자와 3차례 만나 2년간의 경험을 들려줬다.
박윤슬 기자
박윤슬 기자
중년 남성이 서울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서러운 아이처럼 오열한다. 사랑하는 엄마가 눈앞에 있는데 손을 잡을 수도, 얼굴을 쓰다듬을 수도 없다.
“자,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옆에서 때를 보던 다른 남자가 담담히 말한다. 장의사(장례지도사) 이상재(54)씨다. 코로나19로 숨진 망자는 불투명한 녹색 방수 플라스틱백에 봉해진다. 투명 비닐 창으로 얼굴만 겨우 볼 수 있다. 아들은 “왜 작별 인사도 못하게 하느냐”며 따져 묻는다. 이씨도 이 비정한 작별법을 이해할 수 없다. 위에서 내려온 규칙을 따를 뿐이다.
존엄한 죽음이 허락되지 않았던 지난 2년여간 이씨가 숱하게 봐온 풍경이다. 먼저 떠난 가족의 얼굴을 몇 초라도 봤다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정부의 ‘선(先) 화장 후(後) 장례’ 지침 때문에 유족들은 유골함만 건네받았다.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의 시대.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모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장례 절차도 예전처럼 돌아왔다. 25년차 베테랑인 이씨는 “애도하지 못한 죽음은 유족에게 말 못할 상처를 남긴다”면서 “엔데믹을 선언하더라도 남은 자의 트라우마를 껴안는 게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와 동료들이 수습·운구했던 코로나19 사망자는 약 2000명. 지난 2년여간 목격한 죽음에 대해 물었다.
이씨가 페이스실드와 방호복 등을 갖춰 입고 근조기를 든 모습.
이씨는 힘든 기억을 억지로 떠올려 본다. 적지 않은 사망자들이 온 바닥에 피를 토하고 떠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별별 죽음을 다뤄 왔지만, 이번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최대한 빨리,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했다. 이웃이 느끼는 공포감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민원이 들어온다. 딱 30분. 이씨와 3명의 동료에게 허락된 시간이다. 급한 이삿짐 싸듯 움직여야 한다. 죽은 자의 존엄을 따질 겨를은 없다. 방호복과 마스크, 두 겹의 장갑과 덧신, 고글, 페이스실드까지 쓰고는 관을 들고 망자의 집으로 올라간다. 시신을 마주하면 소독약부터 뿌린다. 옷을 깨끗이 갈아입힐 틈도 없다. 수세포(홑이불)로 시신을 한번 감싼 뒤 비닐팩으로 밀봉한다. 시신 전용 밀봉백(보디백)으로 한 차례 더 봉하고, 관에 넣으면 옮길 준비는 끝난다. 곧장 화장장으로 향한다.
보통 3일장에서는 수시(시신의 머리와 팔다리를 가지런히 하는 것), 염습(시신을 씻겨 수의를 입히는 것), 입관(염한 시신을 관에 넣는 것) 등을 거치며 예를 다한다. 코로나19 사망자에게는 이조차 사치다. “사망 직전까지 오한에 떨던 고인을 이불로 덮어놓은 경우가 많아요. 그럼 이불째 밀봉백에 넣죠. 시간이 없으니까요.”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지난 2년간은 유독 안타까운 일이 많았다. “시신을 수습해야 할 주소를 봤더니 보름 전에 갔던 곳인 거예요. ‘잘못 들어왔나’ 싶었죠. 알고 보니 남편이 먼저 떠난 뒤 15일 만에 부인도 코로나로 돌아가신 것이었어요.”
이름조차 가져보지 못한 신생아가 코로나19로 숨져 화장장에 오기도 했다. 손주 울음소리도 듣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말없이 흐느꼈다. 또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 사망자를 수습하는 일도 고통스러웠다.
“병실에 들어가면 80~90대 어르신 8명이 천장을 보고 다닥다닥 붙어 누워 계세요. 거기에 확진 사망자가 섞여 있죠. 살아계신 어르신과 눈을 안 마주치려고 노력했어요. 곁의 노인이 떠난 걸 알면 어떤 감정이 드실지 가늠조차 어렵잖아요. 저희 작업을 애써 외면하는 분도, 측은히 바라보시는 분도 계세요. 가끔 ‘살려 달라’고 외치시는 분도 있죠. 정말 지옥 같았어요.”
장례는 남은 자들을 위한 치유의 절차다. 유족은 망자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동시에 자신의 상처도 어루만진다. 이씨는 평소 장례 때 관을 닫기 전 가족들에게 고인의 손, 발을 한번 잡아드리라고 권한다. 살아생전 못 구한 용서를 빌라는 취지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역할이에요. 발 한번 잡는다고 용서되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고인과 함께한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조금 자유로워질 수도 있고, 원망과 후회가 남을 수도 있죠. 코로나 때는 이 의식이 불가했어요.”
지난 2년여간 국내 코로나 사망자(25일 기준)는 모두 2만 2243명. 이들의 직계가족만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고 가정해도 6만 8000명(4인 가구 기준)에 달한다. 코로나19 대응에 의료 자원을 쏟아붓느라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진 다른 질환 사망자와 백신 부작용에 따른 사망자 등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이 말했다. “가족 내 전염으로 ‘나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아닐까’라고 큰 죄책감을 느끼는 유족들이 있어요. 애도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장례를 제대로 못 치렀다면 돌아가신 분을 그리워하고, 위로를 주고받는 행위를 할 수 없어 모든 게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는 주변인들이 망자에 대한 언급을 애써 피하는 것보다는 이름도 부르고, ‘정말 좋은 분이셨다’고 감정도 나누는 게 유족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적어도 코로나19와 그 여파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씨는 갑갑한 표정으로 말했다. “코로나는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어요. 이후에도 고통을 겪을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팬데믹(대유행) 때 현장에서 치열하게 지냈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 줬으면 해요.”
2022-04-2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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