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쌀과 남겨진 중증장애인…자가격리, 사투가 시작됐다

생쌀과 남겨진 중증장애인…자가격리, 사투가 시작됐다

오세진 기자
입력 2020-03-01 22:20
수정 2020-03-02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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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대책 사각지대 놓인 장애인들

식사 등 지원하던 활동가 확진에 격리
집안 기어 다니며 옷 입는 데 1시간 넘어
빨래·설거지·조리는 엄두도 못 내는데
시·구서 온 구호품에 조리 필요한 식품
“장애 유형별 맞춤 재난 정책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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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환자와 접촉한 사람으로 분류돼 지난달 23일부터 자택에서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강형구씨. 현재 활동지원사가 없어 강씨는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코로나19 확진환자와 접촉한 사람으로 분류돼 지난달 23일부터 자택에서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강형구씨. 현재 활동지원사가 없어 강씨는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요즘 계속 기어 다녔더니 무릎이 아프고 양쪽 엄지발가락 살갗이 벗겨졌어요. 바닥에 쓸리니까···.”

대구 남구에 사는 강형구(36·이하 가명)씨는 지체장애와 뇌병변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이다. 하루 5시간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았지만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의 접촉자로 분류돼 지난달 23일부터 자택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하지만 강씨는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처지다. 겨우 기어서 집 안을 이동하는 수준이다 보니 활동지원사가 하던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은 포기하고 산다. 혼자 옷을 갈아입는 데만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린다. 손을 뻗어도 창문이 닿지 않아 환기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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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가 자가격리 생활 중인 중증장애인을 위해 지원한 구호물품.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대구시가 자가격리 생활 중인 중증장애인을 위해 지원한 구호물품.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음식도 스스로 해 먹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세 끼 중 한 끼는 굶기로 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미숫가루를 물에 타 먹는다. 강씨는 자가격리 일주일째인 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활동지원이 필요하지만 자가격리자한테 누가 와서 지원을 해 주겠느냐”면서 답답해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강씨처럼 자가격리 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가장 취약한 이들의 안전망이 흔들리고 있지만 지원책도 마땅치 않은 모습이다.

중증 뇌병변장애인인 민승기(38)씨도 지난달 23일부터 확진환자 접촉자로 분류돼 혼자 일주일 넘게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민씨 역시 청소부터 빨래, 설거지, 조리 등 집안일은 아예 포기하고 산다. 화장실을 갈 때도 바닥을 기어서 겨우 간다. 그런 그에게 대구시와 구청이 지난달 26~28일 식료품이 든 상자를 보냈다. 민씨는 상자를 열고 한숨이 나왔다. 생쌀, 배추, 봉지라면과 같이 조리가 필요한 식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일부 3분요리와 즉석밥도 있었지만 자가격리 기간(2주)을 버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민씨는 “지금도 전자레인지를 간신히 쓰고 있는데, 활동지원사 지원도 못 받는 장애인한테 생쌀이나 배추를 보내면 어떻게 밥을 먹으라는 것인지···”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달 28일부터 자가격리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인력을 모집하고 있지만,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자가격리 장애인에겐 장애 유형별 특성과 활동지원 상황별 대처 방법 등을 아는 사람의 생활지원이 필수적”이라면서 “지원자도 별로 없는 상황에 전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비중도 많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고 자가격리될 수 있다는 것을 대비한 재난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20-03-0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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