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타려고 나왔냐?” 눈치에… 아픈 ‘김용균들’ 퇴사합니다

“산재 타려고 나왔냐?” 눈치에… 아픈 ‘김용균들’ 퇴사합니다

오세진 기자
입력 2019-12-09 22:50
수정 2019-12-10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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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용균·구의역 김군 잃고도 위험 외주

지난해 산재 사망자 2년 만에 9.5% 증가
회사가 산재 신청 방해… 불이익 주기도
조선업 등 도급 금지 대상 포함되지 않아
“최고경영자까지 엄벌할 법부터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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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제약회사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A씨. 제약회사 청정실(클린룸) 소독이 그의 업무다. 출근 이후엔 독한 소독약에 항상 노출된 상태로 일을 해야 한다. 한번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구역질 증상이 심하게 났다. 몸이 무거워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 무렵 팀장이 말을 건넨다. “이러면 서로 민폐인 거 알지. 너 혹시 산재(산업재해 급여) 타려고 그러냐?” A씨는 결국 건강 악화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내 하청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당시 24세)씨가 입사 3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작업 중 사망한 뒤로 “안전한 일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월 신년사에서 2022년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2142명으로 2017년(1957명)보다 9.5% 증가했다. 다친 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하고, 원청회사가 위험한 일을 하청회사에 위탁(도급)하는 현상이 계속되는 한 노동자의 생명은 계속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지난 7월 이후 접수한 제보 중 ‘직장에서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얻어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의 제보가 98건으로, 이 중 24건(24.5%)이 ‘회사가 산재 급여 신청을 방해하거나, 산재 급여 신청 후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고 9일 밝혔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해당 사실을 은폐해서는 안 된다. 또 산재 급여를 신청한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법과 현실은 다르다.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B씨는 올해 발목을 다쳐 4주간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입원은 할 수 없었다. 회사는 산재 처리 대신 통근 치료를 강요했다. B씨는 작업 중 다시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추가로 다쳤지만 회사는 공상 처리(산재보험에 따른 보상 대신 사용자가 직접 노동자의 병원비를 부담하는 것)를 해 버렸다. B씨는 “저는 모든 업무에서 배제됐고 ‘왕따’ 취급을 받고 있다”며 괴로워했다.

‘위험의 외주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사내 하청 비율이 70% 정도(2017년 68.6%)로 높은 조선업이 산업재해 고위험 대표 업종으로 꼽히는 것이 방증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최근 6년 동안(2014년~올해 5월) 사고로 사망한 조선업 노동자 116명 중 98명(84.5%)이 모두 하청 노동자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전복 사고(사망 6명, 부상 25명)와 같은 해 8월 20일 STX조선해양 폭발 사고(사망 4명)를 계기로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는 듯했다. 노사정 추천 조사위원들로 꾸려진 조사위원회는 “조선업에서 중대 재해가 만연한 이유는 ‘다단계 하청’(재하도급)에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재하도급 원칙적 금지 ▲조선업 안전관리 법·제도 개선 등을 정부에 제안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산안법의 도급 금지 범위에 조선업 다단계 하청 금지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승강장 안전문)를 고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김모(당시 19세)군도 하청업체(은성PSD) 노동자였다. 김군 사망 후 서울시는 스크린도어 외주 정비원 전원을 모두 직영화했다. 하지만 김군이 하던 일(스크린도어 점검·수리·보수)도 산안법 도급 금지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직장갑질 119’의 오진호 운영위원은 “김용균씨가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면서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회사에 무거운 책임을 묻고 원인을 제공한 최고경영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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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9-12-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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