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110주기 경모대회
서울신문의 모태 ‘대한매일신보’ 창간각계 인사·시민 등 100여명 모여 추모
“그의 항일·언론 활동은 3·1운동 밑거름”
본지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시리즈 류지영·오경진·민나리 기자 감사패 받아
항일 언론인 베델 110주기 추모대회
1일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서 진행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 서거 ‘110주기 경모(추모)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영국의 국화인 장미를 헌화하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난 베델은 구한말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항일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베델선생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이 행사에는 이병구 보훈처 차장과 장영달 우석대 총장, 닉 메타 주한 영국대사관 부대사 등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 대회장을 맡은 장 총장은 “베델의 독립운동과 언론 활동은 1919년 3·1운동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고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독립과 인류 정의를 위해 싸운 그의 행동은 지금 봐도 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서면으로 보낸 경모사에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세계 평화를 위해 제국주의 폭력에 분연히 저항한 세계인”이라며 “그의 숭고한 뜻에 고개 숙여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고 전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는 메타 부대사를 통해 대독한 추도사에서 “베델은 조용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인생과 건강을 희생했다”며 “그는 언론 자유의 챔피언이자 한국 독립의 챔피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홍기 서울신문 이사는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정신과 지력을 계승하고 있다. 베델의 정신과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취지를 다시금 확인하고 언론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베델은 1872년 영국에서 태어나 16세이던 1888년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조선으로 건너와 신보와 영자지 KDN을 발행했다. 그는 당시 일본의 노골적인 한국 침략 시도를 목격하며 언론의 자유와 항일운동을 지원했다. 대한매일신보사를 국채보상운동 모금소로 활용하고 항일 비밀단체 신민회(1907~1911)의 본부 역할도 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영국 법정에서 두 차례 재판을 받은 뒤 건강 악화로 37세에 생을 마쳤다. 우리 정부는 그에게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일 서울 양화진 묘역에서 열린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서거 110주기 경모대회에서 서울신문 류지영(오른쪽 두 번째부터)·오경진·민나리 기자가 이번 행사 대회장을 맡은 장영달 우석대 총장에게서 감사패를 받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2019-05-02 27면